버티는 삶에 관하여, 허지웅씨의 에세이다.
우연히 노란색의 표지가 먼저, 그리고 제목이 눈에 들어와 집어들었는데 맨 앞의 '작가의 말'만 읽고 바로 사기로 결정했다.
버티는 삶이란 웅크리고 침묵하는 삶이 아닙니다. 웅크리고 침묵해서는 어차피 오래 버티지도 못합니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지금 처해 있는 현실과 나 자신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얻어맞고 비난받아 찢어져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저 오기가 아닌 판단에 근거해 버틸 수 있습니다.
타인의 순수함과 절박함이 나보다 덜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절대악과 절대선이 존재하는 세상을 상정하며 어느 한 편에만 서면 명쾌해질 것이라 착각하지 말되,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버틴다'는 말이 내가 삶을 표현할 때 자주 써왔던 단어이기도 했고, 목차에서 '우리는 모두 별로다' 라는 제목이 적어도 이 책 안에 편하게 미화된 현실 이야기는 없으리라는 믿음을 주어서였다. 물론 나는 허지웅씨에 대해 잘 모르며 TV 프로그램에서 보아왔던 이미지가 전부다. 적어도 그렇게라도 알고 있는 이미지가 부정적이었다면 책을 안집었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도 호감이어왔다. 이를테면 '내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눈빛과 말투라던지, '나도 별론데 너도 별로야' 느낌의 셀프디스 위에 얹는 직설 같은 것들. 그래서 그가 쓰는 에세이가, 그의 삶이 궁금했다.
4부까지 카테고리가 나뉘어져있는데 1부 '나는 별일 없이 잘 산다' 가 거의 일기처럼 그의 삶을 담은 글들이었고 2부 '부적응자들의 지옥'과 3부 '그렇게,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 엔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련된 그의 시선이 드러나고 4부 '카메라가 지켜본다'에서는 영화 평론 종류의 글들로 엮여있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던만큼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1부였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보다는 그가 그의 삶을 말하는 태도와 말투(글투?!)가 좋아서였다. 오랜만에 읽다가 소리를 내서 웃기도 한 것 같다. 그의 삶이 즐겁고 재밌어서가 아니라, 속시원함과 공감과 솔직함 등이 던져주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2부에서 4부까지의 내용에서도 몰랐던 사실들도 알고, 세상을 다시 보게끔 하는 좋은 글들이 많았지만 나는 허지웅씨의 '냉소'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쓰고 싶어진다.
자신이 받은 얄량한 상처의 총량을 빌미로, 타인에게 가하는 상처를 아무것도 아닌 양 무마해버리는 비겁함.
아무튼 산다는 건 액정보호필름을 붙이는 일과 비슷한 것이다. 떼어내어 다시 붙이려다가는 못쓰게 된다. 먼지가 들어갔으면 들어간대로, 기포가 남았으면 남은대로 결과물을 인내하고 상기할 수밖에 없다.
TV속에서 느꼈던 그의 모습이 이 책에서 느껴지는 모습과 별로 이질감이 없어서 좋았다. 그만큼 그가 TV에 나오는 인물로서(이것을 연예인으로 지칭하는 게 가장 어울릴까) Showing을 해오지 않았다는 뜻일테니까. 물론 프로그램은 재밌어야 하니까 그의 배경으로 사악하고 어두운 기운을 마구마구 그려주곤 하지만, 사실 그 비관적이고 냉소적으로 느껴지는 시선이야말로 진짜 세상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면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라기보다는, 덜 이상적이고 더 솔직한 것. 그의 말투에는 체념적인 태도가 자주 묻어있는데, 그게 포기라던지 좌절과 같은 어두운 마음상태가 아니라 별로인 것은 별로이고 나약한 것은 나약하게,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어쩔 수 없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일 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으며 그게 하나의 용기라고 생각한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과 마주하는.
사실 냉소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편리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비관과 냉소는 대개의 경우 피폐한 자들의 가장 쉽고 편한 도피처다. 나는 냉소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가 제일 아늑하고 좋다. 글쓰는 자에게는 냉소적인 태도가 객관성을 담보해주기도 한다. 뜨겁고 충만할 때보다 냉소적일 때 했던 말과 글이 더 오랜 시간 유효하다.
.. 너무 많은 비관과 냉소는, 때로는 막연하고 뜨거운 주관보다도 되레 진실을 더욱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냉소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가 제일 아늑하고 좋다는 말에 공감했다. 냉소라는 게, 덜 기대하며 살아가는 태도여서라고 생각한다. 덜 기대한다는 것은 애정이 없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세상에 대한 애정일뿐이다. 냉소적이라는 게 차가운 시선을 의미한다면 따뜻한 시선들에 비해 '덜 아름다운' 세상 자체를 받아들이며 애정을 주는 일인 것이다. 기대의 끝엔 실망과 상처가 자주 따른다. 물론 기대하는만큼 세상이 아름답고 일이 다 잘 풀리는 곳이라면 좋겠지만은, 분명히 세상은 우리의 기대보다 불친절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산다는 것은 그런 세상을 인지하고 상처를 덜 받으며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렇게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비단 세상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게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늘 괜찮고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실상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실히 납득시킬 때에 냉소라는 시선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자신이 슈퍼맨이라도 되는 양의 유아적인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그보다 희망적이라면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면에서만큼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식일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그가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자신의 별로인 모습들을 담담하게 풀어서 좋았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별로인 모습의 자백들이야말로 그를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셀프디스라는 것은 적어도 아이같은 셀프찬양보다 덜 우스운, 어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삶의 이야기를 1부로 카테고리화한 것은, 뒤의 2부-4부까지의 내용에 더 효과를 주는 순서 배정이었던 것 같다. 1부에서 그의 괜찮은 모습들을 충분히 느꼈기 때문에 2부부터 시작되는 세상에 대한 그의 시선과 생각들도 더 존중하는 마음으로 깊이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건들에 대해 진짜 중요한 문제를 꼬집기보다는 화제화하기에 바쁜 언론에 대한 비판들은 드라마 피노키오를 생각나게 했다. 자꾸만 이분화시켜가며 내편 아니면 니편 식으로 몰아가는 사회의 모습도. '공포를 도매가로 팝니다' 라는 글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원래 인간은 자신이 두려워하거나 알지 못하는 대상에 명료한 이름을 붙여 그것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떠벌리기 좋아하는 종자다. 언론이 해법을 제시한다. 애니매이션 때문이다. 웹툰 때문이다. 왕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그것은 더이상 미지의 공포가 아닌, 가십으로 전락한다. 이제는 쉽고 재미있는 점심시간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포 도매' 마케팅은 당장 눈앞의 편한 대상을 원흉으로 몰아 문제를 단순화하고, 실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고민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악랄한 성격을 갖는다.
이게 2012년에 쓴 글이던데, 요즘의 현상에도 딱 맞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최근에 이게 쓰여진 글처럼 여전하다는 것이다. 최근에 이슈화되고 있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 다 그렇다. 그가 이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 역시 그의 냉소 덕분이다. 애초에 인간이 그러함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 그러고보면 문제의 해결까지는 안되더라도 해결해야한다는 인지의 시작부터 냉소 안에서 가능해지는 거 같다. 더 이상 좋게, 괜찮게, 편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고 골칫거리라는 게 질색이기 때문에 진짜 모습보다는 보고 싶은대로 보며 살아가지만, 그렇게 살아가면 세상은 '편하게 오해된 상태에서' 더 변할 수 없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냉소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허지웅씨 자신도 스스로를 냉소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한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재미있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반가웠던 문구 중 하나.
세대 담론이 애초 당연히 이행되어야 마땅했을 계급적인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기는커녕, 기성세대들에 의해 '청춘'을 둘러싼 감상적 소회로 귀결되고 그 안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애틋하고 축축한 말은 '외부환경에 의해 강요된 아픈 시기를 어떻게 견뎌내야 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이고 딱딱한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이 겸연쩍게 만들어버린다.
때론 냉소를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드는 사람들이 있다. 긍정적으로 잘 살아간다고 자신하는 사람들 중엔, 실제로 자기도 모르게 긍정을 강요받으면서 별 의심없이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왔을 뿐인 경우도 많다.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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