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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위해 듣는 노래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장난(작란)과 비극의 탄생

   - 파도에 꽃들, 공중곡예사, 비극의 탄생

 

 

 밴드 폰부스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내 생각을 넣어 몇 곡들에 대한 글을 쓴 적 있지만

이번엔 모두가 듣고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몇 곡들을 더 풀어보고 싶다.

사실 내 취향에 맞아서 좋아하는 락밴드들은 많은데 그 중에서도 폰부스를 0순위 애정으로 지켜보게 된 계기는 세월호사건 추모곡인 '파도에 꽃들' 이라는 곡이었. 그러면서 앨범 '장난'을 다 들어보게 되었고.

 듣고나서 '- 이 밴드는 특별하다.' 생각했는데 흔한 사랑이나 인생 이야기들 말고도, 점점 잊어가기 쉽지만 꼭 '기억해야'들노래로 '남겨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집합체가 작년 5월 발매된 미니앨범 '장난'.

 

그런 여러 곡들 중에 뽑아본 세 곡은, (사실 이 앨범 전곡을 추천하지만)'파도에 꽃들', '공중곡예사', 그리고 '장난' 수록곡은 아니지만 지난달에 나온 신곡 '비극의 탄생'

노래를 들으며 느꼈던 내 생각도 있지만, 실제 그들이 들려주려던 이야기가 중요한 것 같아서

인터뷰 글 '폰부스: 쾌락에서 성찰로, 자아로부터 세상으로 by 이경준'  참조했.

 

인터뷰글 보기

http://diffsound.dothome.co.kr/%ed%8f%b0%eb%b6%80%ec%8a%a4-%ec%be%8c%eb%9d%bd%ec%97%90%ec%84%9c-%ec%84%b1%ec%b0%b0%eb%a1%9c-%ec%9e%90%ec%95%84%eb%a1%9c%eb%b6%80%ed%84%b0-%ec%84%b8%ec%83%81%ec%9c%bc%eb%a1%9c/

 

 

 

 

 

 

 -인터뷰 내용 중-

 

장난, 지을 작()자에 어지러울 란()의 조합이다.

상세히 풀어준다면.


박한: 평범한 시절을 보면 나도 그냥 심술궂은 장난일 뿐이라는 가사가 있다. 이거 군 가혹행위에 대해 쓴 곡인데, 그 소절 자체가 이 음반의 모든 걸 내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런 저런 형용사를 붙여 보면서 ~~한 장난으로 가 보려고 했는데, 수식어를 붙이면 붙일수록 그 수식어가 내용을 가둬 버리더라.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의중이 축소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장난두 글자로 가자고 합의를 하게 되었다.

 

 

 

폰부스 EP앨범 "장난" 커버

 

 

 

# 파도에 꽃들 - 세월호 사건    →♬듣기  https://youtu.be/gI3mV6K3vy0

 

 이 곡은 메이저코드로 밝은 듯이 시작하고

 '파도에 꽃들'이란 제목과 가사 표현마저 예뻐서

 더 아프고 울컥거리는 곡이다.

 파도에 꽃들. 뒤짚힌 꽃잎.

 아이들.

 

 아이들이다.

 찾아보면 세월호사건을 조명한 곡들은 꽤 많은데

 이 곡이 유난히 마음 아프게 다가오고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이들이 화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사건 자체가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우리는 이 사건으로부터 밀려오는 분노, 슬픔,

 답답함, 죄책감과 같은 강렬한 감정들을 한없이

 쏟아내게 되는데 이 곡 가사엔 그런 감정들이

 녹아있지 않아서, 너무 깨끗하고 맑아서 더 아프다.

 

 별이 떠있나요 기다리는 곳에

 밤새 이슬들이 무겁진 않았나요

 첫 부분 들으면서부터 울컥하게 된다. 팽목항에서

 자신들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아이들. 걱정했냐며 달려가 안기

 고 싶었을 아이들은 아무리 파도를 뒤적여봐도 나올

 수 없었다. 빛조차 닿지 않는 배, 깊은 바다, 그 어

 속에서.

 

 정말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수학여행이라고 들떠있었을,

 꿈도 많고 사랑하고 한창 생명력을 품고 자라나야할

 봄같은 아이들은 밤처럼 어둡고 깊은 바다 속에서

 더 이상 수업 종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뉴스를 면서 우리도 도무지 믿기 어려웠던 이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고 지켜져야

 하는 존재들이었고 자신들을 지켜주리라고 

 어른들을 믿고 기다렸을텐데.  

 이 아이들의 영혼이 그렇게도 무거웠던 걸까. 우리는

 구해내지 못했고 아이들은 가라앉았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온 것과, 이런 세상의 어른들이라

 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데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들의 위로하는 듯한 가사가 곡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서 더욱 슬퍼진다.

 

 어머니 울지 말아요 난 이제 그만 어두워질래요

 다만 내 이름은 꽃잎이라 기억해줘요

 

 인터뷰 읽다가 알게 된건데, 드럼을 "쿵쿵는 부분도 '아이들이 배 벽을 두드리는 것'을 연상할 수 있어 의미심장하다는 것. 가사에서 '파도에 꽃들, 파도에 꽃들' 이 반복되며 부르게 되는 것도 저 파도 속에 휩쓸려간 아이들을 안타까움에 하염없이 불러보게 되는 마음을 대변해주는 느낌이 든다. 이 곡들 들으며 생각했던건, 아이들의 수업은 끝나버렸지만 이 사건이 들려주는 수업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고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난 이 곡을 듣고 올해에야 세월호 팔찌를 샀다. 마음이 불편한 일들은 이기적이게도 시간속에 묻어가게 되곤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다가 이 곡을 들으며 정신이 든 것이다. 최소한 팔찌를 하고 다니며 기억하는 것만이라도, 꽃잎같은 아이들을 영원히 잊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되겠다는 각성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곡을 만들어준 폰부스에 너무 고마웠다. 이 곡은 세월호팔찌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팔찌처럼 닳거나 잃어버려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찾기만 한다면 언제나 들을 수 있는 음원이 있고, 노래는 영원히 남는다. 시간이 흐르며 잊혀지려고 할 때마다 이 노래가 불러지면서, 우리들에게 끝나지 않는 수업의 몫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전에 아이들이 부르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듣고 눈물이 났었는데, 이 곡을 아이들이 부르면 끝까지 못들을 것 같다.


 인터뷰 내용 중 (박한)

 

- 굉장히 아픈 사건이라 노래로 만든다거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말해버리는 순간 울먹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여서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여전히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건 아니다. 이제는 말을 할 때가 아닌가. 우리라도 말을 해 보자. 시대를 그리는 음반이니 이걸 첫 곡으로 해 보는 게 어떨까? 그렇게 스타트를 했다.

 

- 아무리 봐도 만한 메타포를 구하긴 힘들더라. 활짝 핀 꽃은 최고로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하고. 그게 이 이야기를 포괄할 수 있겠다 싶어서 모티프로 삼았다.

 

- 상처받은 사람들은 이 친구들이고, 잘못한 사람들은 물 밖에 있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상처받은 친구들이 바깥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역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역설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 어머니라는 말은 가사에 안 넣으려고 했다. 위로받아야 되는 대상들을 제한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런데, 또 때가 되니 막상 그 이름을 지우진 못하겠더라.

 

- 보컬 녹음할 때도 광선이한테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부르라고 주문을 했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전달력도 생기고 소름끼치는 곡이 될 것 같았으니까. 다음 날 평범하게 교실에서 만난 친구처럼, 그저 일상의 하루가 지나간 것처럼 부르라고 했지.


 

공중곡예사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사건  →♬듣기 https://youtu.be/XoyRbdLDl8o

 

 

 이 곡에서 '콘크리트 굴뚝 위에 선 공중곡예사'는 한파를 뚫고 평택공장 70M 높이 굴뚝에 올라가야했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조금이라도 더 실내에서 웅크리고 싶은 한겨울에 높은 굴뚝 위에 올라간 것은, 그들의 선택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던 선택이었다. 그 뒤에 그들을 그렇게까지 하도록 만든 세상이 있고 이 곡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들려준다.

 그들이 기둥 위로, 외줄 위로 올라야했던, 어쩔 수 없던, 포기 못한 이유.
 공중곡예사.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고, 그래서 눈길을 끄는 묘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정말 '묘기'로만 끝나게 할 것인가는 지켜보는 사람들에 달려있다. 그 묘기 자체에 놀라며 입벌리고 바라만 보는 것과, 그들이 '왜' 저 가혹한 서커스를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왜 누군가는 저렇게 위험한 묘기까지 해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지.

 

 유일하게 중간에 나레이션이 나오는 곡이기도 하다.

'나는 인간답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별들을 지우고 어둠속에 쓰러진 그림자에 등 돌렸던가 이제 나의 확성기는 거짓을 부풀리는 대신 침묵으로 외치겠다 ... '

 

 사건 당시에는 계속 이야기되고 이슈화도 되었었고, 굴뚝 세 개의 모습인 1월 11일을 '굴뚝데이'로 이야기하며 응원하는 국민도 많았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다. 당시 해고된 분들 중 아직 복직하지 못하신 분들이 대부분인데 투쟁이 끝난 줄 알고 후원이 많이 끊겨서 생계비, 투쟁비 마련을 위해 사업까지 직접 해보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 역시 나도 한동안 잊고 지내고 있었기에 며칠 전에 소식을 듣고 이 노래도 다시 들어보게 되었다. 어쩌면 내 일이 아니라고 해서, 이런 노래들이 없다면 더 쉽게 잊어버리고 말 정도로 내가 이기적인 존재인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에겐 생존의 문제인데 시간이 흘러 하나둘 잊어가는 사람들과 세상이 많이 원망스럽진 않을까. 적어도 그들의 묘기가 묘기로만 끝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존재는, 묘기를 부렸던 그들이 아니라 그것을 다 지켜보았던 우리들일텐데.


 인터뷰 내용 중 (박한)

 

- 역설을 한 번 더 보여주고 싶었다. 곡예사는 말했다시피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존재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에게 사람들은 박수친다. 하지만 그는 극도로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정작 자신은 죽을지도 모르는 이 상황이 저 굴뚝 위에 올라가 계신 분들의 처지와 유사하게 대입이 될 것 같았다. 그 소식을 듣는 우리는 그분들의 입장을 모르는 채 뉴스를 소비할 뿐이구나.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다.

 

-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왜 내가 여기 올라왔는지 설명해줄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저 위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걸 부러진 부리로 추락한 가난한 저 새들이라는 비유에 담아낸 것이고. 간주에 흐르는 연설은 이 친구들이 간주에 넣으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줘서 삽입해 본 거다. 곡으로만 다 말하지 못한 것들을 이 연설을 통해 보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비극의 탄생 - 강남역 사건, 구의역 사건      →♬듣기 https://youtu.be/Edqlmuf428g 

 

 

         

앨범소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이번 키비타스 프로젝트 네 번째 곡은 니체의 책과 그 표제를 같이한다. 하지만 이 노래는 2016년 5월에 벌어진 강남역 부근과 구의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우리 시대의 구조화된 비극과 상황을 지적하고 어떻게 비극이 탄생하고 있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밤이 너무 깊어 새벽에 건져진 소녀와 시간이 부족해 결국 다른 방법이 없었던 소년을 위로하고 있다. 한 여성의 죽음으로 우리는 우습게도 화장실만 바꿔놓았고 한 청년의 죽음으로 우리는 단 1초도 더 여유를 가져보지 못했다. 이 상황은 어느 옛 시인의 시구로 설명되어진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그 방 문을 열고 나가면 결국 이 거대한 비극 안에 또 다른 장(場)이 있을 뿐이다.

 

 비극의 탄생은 시작부터 '따랏따라라 따따따라라-' 하는 중독성 강한 반복구와 함께 특이한 일곱박자에 맞추어 정신없이 달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개인적으론, 비극적인 두 사건이 있었음에도(물론 사건 당시만큼은 정말 크게 이슈화되었지만) 결국에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각자 자신의 바쁜 삶을 살아가는 중인 모습을 느끼게 해주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첫 가사부터 장막이 올라가며, '비극의 탄생' 이라는 하나의 연극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이 비극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무리 엄청난 사건들이 벌어져도, 무대 위에서 결국 무기력하게 사라져가는 역할들. 계속 반복해온 오래된 비극을 끝내기 위해 더 이상 그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가사 속에서 '그래서 너는 어떤 역할을 할건데?' 라고 묻는 느낌이 든다.

 해피엔딩으로 흘러가던 극도 한 역할이 악역으로 변하는 반전을 통해 비극으로 끝내버릴 수 있듯이, 극의 흐름은 역할들이 만들어간다. 한 사건에서 가해자 역할이 있으면 당하는 역할도 있고 지나가는 사람1, 지나가는 사람2 와 같은 역할 있다. 어떠한 표정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렇게 외면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분명한건, 아무리 많아봤자 나오는 역할들을 손에 꼽을 수 있고 한 명의 반전만으로도 흐름이 바뀌는 연극과 달리

이 현실 세상, 이 무대 위에는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의 역할이고,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역할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이 극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한두명의 역할 반전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 이 노래를 듣다보면, 이 무대 위에서 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하는게 지금의 내 역할에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일지를 한번쯤 더 생각하게 된다.

 


 

 세 곡 다 여러 명을 떠나보내야 했던 비극적인 사건들인데, 너무 감정적으로 치우쳐지지 않은 채 가사를 전달하기 때문에 더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는 것 같다. 그냥 엉엉 크게 울고 있는 아이는 보면 '쟤가 슬프구나' 정도만 보게 되지만, 두 눈에 눈물 맺힌채로 터질듯말듯 꾹 참고 있는 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까지 보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차라리 울라고 말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난 사회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정말 평범한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지만 그 중에서는 적어도 기억해야할 것들은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내게 이런 곡들이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되고, 나처럼 어느 순간 내 인생 뒤로 중요한 것들을 잊어가고 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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