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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총 9권으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만화책. 이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있다.

내게 있어서 만화책 전권을 소장하게 되는 건 처음이고, 생일선물로 고맙게 받게 되었다.

학생 때 만화책을 좋아하고 잘 그리던 친구가 소개해주던 만화책을 여러권 읽었었고 지금 그 중에 기억남는 제목은 후르츠바스켓, 유리가면...? 그리고 내가 나중에 꼭 소장해야지 생각했었던 천계영의 DVD(결국 최근 중고 전권을 샀다).

어쨌든 '이 친구가 추천한거라면 당연히 내 취향일거야'라는 믿음이 가는 친구가 선물해준 만화책 전권은 충분히 내가 들뜰만한 선물이었고 천천히 소중하게 열심히 읽었다. 안그래도 바다에 가고 싶은 요즘이었는데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니. 바다에 안간지 2년.. 3년.?

 

좋은 장면들을 여럿 찍어 폰에 저장해두었지만 여기엔 저작권 문제로 두 페이지 정도 밖에 올릴 수 없을 것 같아 사진은 두 개를 고르고 좋았던 구절들을 따로 적어놓기로 했다.

 

"자신이 있을 곳을 겨우 찾았는데 거길 떠나야 한다는 게 불안한 거 아닐까요.

이제는 고민도 했다가 잠시 멈추기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그걸 깨닫는다면 틀림없이 앞으로 나아갈거에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이런 말은 무책임하게 들리니까 하지 않을게."

 

이 만화책에서 아무래도 공감이 가는 말을 많이 했던 주인공은 간호사인 첫째 언니였다. 둘째가 언니에게 물어볼 때의 대답.

 

"있잖아... 언니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많이 대하고 있잖아? 그건 어떤 기분이 들어?"

"어떤 기분이냐니?"

"일일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면... 일을 할 수 없지 않아? 어디선가는 마음을 좀 풀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균형을 잡지 않으면 확실히 일을 제대로 해나갈 수 없어.

하지만 일이니까, 하고 딱 잘라 생각할 수 있냐면 그건 또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

몇 년이 지난들 환자의 죽음에는 익숙해지지 않아."

 

의사나 간호사처럼 환자들과 늘 함께 하는 직업은 불가피하게 많은 죽음들을 보게 된다. 누구나 장례식장에 가본 경험이 있고 또 가족 친척, 지인 누군가의 죽음도 겪긴 하겠지만 직업적으로 일상인 듯이 죽음을 목격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 예를 들면 60명의 환자를 보는 와중에 중환자가 10명 정도 되는데, 그 중 1명이 돌아가셨을 때 그 죽음에 감정이입하여 울고있기엔 바로 나의 오더와 처치를 기다리는 아직 삶의 지속을 꿈꾸는 환자들이 여전히 있는 것이다. 의사들은 초창기에는 그런 사망선고와 죽음에 익숙치않아 울기도(나도 처음엔 울었다) 하고 적응이 어렵지만, 점차 감정을 누르며 바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고 다음 환자를 보러가는 행동에 적응이 된다. 그렇지만 그건 결코 죽음 앞에 가벼워지거나 무뎌진 게 아니다. 필요에 의해서 감정을 누르고 이성적으로 나를 컨트롤하는 것 자체도 의사의 능력이고 그런 작업에 익숙해져가는 것이다. 의사일을 하며 몇 년이 지나도 수십번을 사망선고를 해보았다고 해도 죽음이란 어김없이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다. 우리들만큼.. 몇 분 사이로 차갑게 식어가는 신체와 멍들어가는 듯한 전신을 지켜보아야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감기지 않는 눈과 열려버린 동공... 수많은 환자분들을 보내왔고 2년 전의 기억조차 가끔씩 지금의 나를 울게 만들기도 한다.

 

"저런 타입의 사람이 죽어가는 병자를 감당했을 리가 없어"

"뭐?"

"그런 사람들 있잖아. 현실을 못 받아들이고 꽁무니 빼는 사람들.

물론 본인으로선 그것도 최선을 다한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거짓은 아니야. 그게 한계인거지.

죽어가는 사람을 마주한다는 건 정말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거든.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폭이 좁다고 나무라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

 

말기암 선고가 된 남편의 병문안을 자주 오지 않던 아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니까, 간호사인 첫째가 얘기하는 건데 이 부분도 많이 공감되었다. 중환자를 가족으로 둔 보호자들을 면담할 때 '왜 이렇게 무심하지''왜 자주 안오지' 그게 애정이 덜한 건 아닌지 포기한건지 서운해하며 의심을 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정말 오만한 추정이다. 아픈 사람을 오래 지켜보는 건,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큰 정신적 힘을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은 마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떤 보호자들은 그 병원비를 벌기 위해 매일 보고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직장에 있기도 한다. 환자의 곁을 오래 지키는건 현실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두에게 가능하기만 한 일은 아닐뿐더러,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폭이 좁다고 나무라는 건 가혹하고 또 잔인한 일이다.

 

그밖에도 이 만화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은데 각자 개성이 있으면서도 공통적인건 인간적이고 따뜻하다는 거. 

 

유이의 의족은 정말로 그럴듯해서 발톱까지 제대로 붙어있다. 하지만 그 발톱은 절대 자라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건 있다.

 

"노력하면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는 말처럼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지만

노력 안하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스즈한테는 언니들의 존재가 컸다고 봐야죠."

"그렇지만 뭐, 특별히 고민을 들어주거나 한 건 없어요. 치카는 몰라도 저랑 바로 밑의 동생은... 스포츠 문외한이랄까.

축구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요."

"그런 건 상관 없어요. 축구에 관한 조언은 저희가 하면 되니까요.

중요한 건 애정을 갖고 날 지켜봐주는구나 하고 실감하게 해주는 것 아닐까요?"

 

"미리 나서서 걱정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니죠. 환자분들의 재활 치료도 마찬가지에요. 실은 손을 내미는 게 훨씬 간단해요.

장애의 정도가 같아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재활치료의 진행 속도는 크게 차이가 나죠.

신체 건강한 우리가 장애를 입은 사람의 본심을 이해하는 건 솔직히 불가능해요. 그래서 차라리

'계속 곁에서 지켜보겠다. 그것밖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고, 할 수 있는 것 역시 그 정도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적어도 오만해지진 않을 테니까요."

 

"우리 언니가 이런 말을 했어요. 환자들의 얘기를 듣고서 알게 된 게 있다고요.

삶의 끝에 죽음이 있는 게 아니라, 죽음은 늘 그림자처럼 곁에 있는 거라고요.

물론 그걸 늘 의식하고 살아서는 안 돼요. 병에 걸리거나 마음이 약해졌을 때 죽음이 갑자기 얼굴을 내미니까요.

그분은 어쩌다 그 죽음의 얼굴을 보고 말았던 거예요."

 

"철저히 혼자라고 허세를 부려봐도 사람이 그렇게 간단히 혼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게 어쩌면 고마운 일 아니겠나.

고립과 고독은 다르니까. 후쿠다 씨는 고독을 즐기지만 고립돼 있는 건 아니야."

 

몸도 마음도 지치던 와중에 이 만화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귀엽고 풋풋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쉽지 않은 어른의 연애에서 공감하기도 하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려는 용기, 또한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기 스스로부터 마주하게 되어버리는 인간의 나약함, 그 모든 것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쳐나가게 만드는' 사랑. 이 만화책 안에 혼자인 사람은 없었다. 꼽아놓은 한 구절처럼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고립된 사람은 없었다.

철저히 혼자라고 허세를 부려봐도 사람이 그렇게 간단히 혼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이 만화책을 보고 나면 이 만화의 배경이 된 일본 지역을 실제로 가보고 싶고 잔멸치토스트도 먹어보고 싶고, 이들이 그곳에 산다면 만나보고 싶어진다. 이 만화책을 소장하게 되어서 지금 다시 한 번 기쁘다. 여유가 생기면 영화도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