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x 3m 넓이에 4m 높이로 된 교도소 감방 안에서 살고 있는, 이중종신형을 선고받은 남자
그리고 돌아오지 못할 그를 기다리며 편지를 쓰는 여자.
이 연인은 세계화와 일방적인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던 활동가들이자 결혼을 약속했던 사이였는데, 남자가 수감되면서부터 생이별을 하게되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이 책은 그 편지들을 엮은 것인데 여자가 보낸 편지들과 그 편지 뒤에 남겨져있던 남자의 메모들로 묶여있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사실 그냥 연애편지 묶음이 아닐까 싶지만, 이 책에서 편지들을 읽으며 마음 한 켠이 울렁거리게 되는 것은 단순히 이들의 사랑이 연애감정 정도로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뒤편에 보면 이들의 연애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고 세계화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들의 사랑은 곧 저항의 다른 이름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들이 공간적인 자유를 빼앗겨 다시 손을 잡지 못하면서도 꿋꿋하게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은, 그들에 대한 폭력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고 또 자기 자신들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절박함이다.
뒤에 옮긴이의 말에서 붙여놓은 제목이 적절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 우리 자신으로 남기 위한 절박한 싸움.
편지글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다보면 아이다의 사랑 자체가 얼마나 깊고 단단한지를 느낄 수 있고, 그것이 '어쩌면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을' 남자를 향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뻗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 자신과 서로에 대한 것뿐만이 아닌 세상에 대한 열정. 그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조금은 더, 용감하고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졌다. 어쩌면 내가 그런 열정을 쏟아낼 수 있을만한, 지켜내고 싶은 그 무언가, 내가 정말 소중히 하고 싶은 것들, 그것들을 좀더 깨달아는 것이 아직은 먼저이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래부터는 줄을 쳤던 문장들. (그리고 여기에 옮길 수는 없지만, 그녀의 손 그림들이 너무 좋았다.)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것과 영원한 것이, 결국에 가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영원한 것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옳아요.
영원한 것은, 독방에 갇힌 당신과, 여기서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당신에게 피스타치오와 초콜릿을 보내는 나를 필요로 하죠.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그가 말했어요. 하지만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왜 눈물이 났던걸까. 의자를 고치는 건 이렇게 쉬운데 나머지 일들은 너무 어려워서? 아니면 이젠 의자 고치는 일 같은 걸 당신에게 부탁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당신에게!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작은 일이에요.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거대한 일은, 오히려 우리를 더 용감하게 만들어 주죠.
부재가 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에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시간에 관한 문제죠. (거기에 대해선 그들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에요. 가끔씩 그 둘을 혼동하기 쉽고, 거기서 슬픔이 생기는 거죠.
내가 받는 것은 당신의 응답이 아니에요. 있는 건 항상 나의 말뿐이었죠. 하지만 나는 채워져요. 무엇으로 채워지는 걸까요.
포기가 포기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걸 이해한다면, 우리에겐 두려움도 없을 거에요.
그런 작은 선물들에 대해선 서로 감사의 말을 전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그건 관심의 쉼표 같은 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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