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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기/영화

토이스토리4 - 우디와 포키, 달라보이지만 비슷한 삶의 여정

토이스토리를 본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내가 시즌 몇까지 봤던 건지 가물가물하다가... '포키'의 존재를 모른다는 점에서 토이스토리4는 확실히 안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포키'가 새로 등장하면서 이 시즌4의 주인공이 포키라고 생각했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우디구나'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영화 속에서 좀더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건 '포키'가 외치는 대사들이 주였던 것 같긴 하다. 

우디와 친구들은 이제 인형을 가지고 놀기엔 커버린 앤디의 소유에서 벗어나 동생인 보니의 소유가 된다. 보니는 앤디처럼 우디를 주로 데리고 놀지 않아서 어느 날부터인가 장롱 안에 처박힌 채 자신의 역할을 잃은 상실감이 우디의 표정에 자주 드러나고(겉으로 태연한 척 하지만), 우디는 그 와중에 어떻게든 자신의 역할을 찾고 싶어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다. 보니의 첫 유치원에 몰래 따라가고 보니를 도와주려고 애쓰는 것. 나중엔 보니가 아끼는 포키가 도망칠 때마다 열심히 붙잡아두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보니 곁에 데려다놓으려는 모험을 하기까지. 이런 행동들은 아마 보안관이라는 우디 캐릭터 자체가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명감으로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 뒤까지 보다보면, 앤디가 주인일 때와는 다르게 실직자가 된듯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을 잃어가는 허무함과 위기 속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우디만의 안쓰러운 발버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우디를, 보니로부터 탈출하려고 하며 몇 번이고 위기에 빠뜨리는 '포키'는 보니가 유치원에서 직접 만들어낸 장난감이다. 아니 포키 입을 빌어 말하자면 '쓰레기'겠지만.

포키는 보니가 첫 유치원에 적응 못하고 홀로 외롭게 있다가, 쓰레기통에 버러져있다 꺼내진 포크와 철사로 '분리수거 재활용'하듯 만들어낸 보니만의 장난감이다. 보니는 처음으로 아빠엄마와 떨어져 친구들도 바로 사귀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있던 중에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포키라는 대상을 통해 힘을 얻는다. 웬 포크지 싶은 쓰레기 재활용 인형인 포키가 보니에게만은 특별해지는 이유다. 보니에게 포키는 아빠엄마와 떨어져있어도 의지가 되어줄 애착인형과 같은 역할이자 위기 속에서 자기 스스로 해낸 처음을 의미하게 된다. 보니가 포키를 잃어버려 울 때 부모님은 다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바로 포키가 가지고 있는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안돼요 포키는 하나뿐이에요!'  보니의 그런 애정을 받으면서도 포키는, 쓰레기통에 있다가 갑자기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황당할 뿐이지만 말이다ㅎㅎ

 

# 내 운명을 바꾸려하지 마, 난 쓰레기야!

포키는 인형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계속 쓰레기통으로만 돌진하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기도 하며 '난 인형이 아니라 쓰레기!'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고집스럽게 이야기한다. 이 장면들이 이 영화속에서 재미있는 설정이자 요소였던 것 같다. 우디와 인형들 입장에서는 '주인이 아끼는 소유물이자 인형'이 된다는 것이 엄청난 행복이고 부럽기만할 따름인데, 포키는 그 행복을 제 발로 걷어차며 자신이 쓰레기라고 주장만 해대니 말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보니의 사랑을 받는 것이 행복'이라는 점에 대한 보니의 인형들과 포키 사이의 믿음이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그보다는 서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이 달라서 생기는 차이다. 기존의 보니의 인형들은 자신들이 보니의 소유물이자 인형임을 인지하고 있고 포키는 자신이 인형임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일 뿐.

우디와 밤길을 함께 걸을 때 태연하게 묻는다. "왜 내가 장난감이어야 해?"

본인의 정체성은 쓰레기라고 굳게 믿고 있는 포키에게는 당연한 질문. 거기에 또 당연하게 우디는 대답해준다.너의 발에 보니 이름이 써 있으니까, 라고.

보니의 인형들은 그런 포키를 이해할 수 없지만, 포키는 사실 그들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정말 진지하고 순수한 태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보니에게서 벗어나 보니를 울게 하려는 악의도 전혀 없고.

쓰레기였던 포키는 정말 본인이 쓰레기라고 믿고 있고 갑자기 인형이 되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쓰레기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는 점은 포키의 태도가 나중에 변하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우디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존재가 정말 보니에게 힘이 되고 있고 보니가 만들어낸 인형임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부터, 자신이 더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인형임을 받아들이고 도망치지 않는다.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수용하며 태도가 변하는 것이다.

포키를 보니에게 데려다주려다가 우디는 '개비개비' 일행에 휘말리게 되고 보니 곁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해진다.

물론 우디보다 더 일찍 주인을 잃고 이별하게 되었던 '보'와 재회를 하는 행운도 갖게 되지만, '보'는 주인 없이 긴 시간 방랑을 하면서 더이상 '주인이자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일'에 냉소적인 인형이 되어있다. 세상에 아이들은 많고, 그 누군가 한 명에게 묶여있을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목숨을 걸어서라도 포키를 보니에게 데려다주고 싶어하는 우디와 갈등을 맺는다. 그 절실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로 등장하는 개비개비는 우디처럼 사랑받는 것을 장난감의 사명으로 여기고 그걸 이루기 위해 우디의 멀쩡한 소리상자를 탐낸다. 개비개비는 자신의 소리상자가 불량으로 태어나 주인이 될 뻔한 아이에게 버림받고 계속 사랑받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도 단 한번이라도 그런 사랑을 받아보았으면 좋겠다고 동정심을 구하고, 우디는 결국 포키도 살려내는 조건까지 걸어 자신의 소리상자를 내어준다. 우디에겐 보안관으로서 멋진 목소리로 외치게 해주는 그 소리상자가, 일말의 자존심이었을텐데. 더 이상 자신은 보니에게 앤디에게서만큼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보니에게 더 필요한 것은 포키일 것이기에 자신을 희생해서 포키를 구해내는 것이 마지막 사명이자 자신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 우디와 포키,  각자 정체성의 변화를 받아들여가는 여정

소리상자도 내어주고 목숨 걸고 포키를 구해내려는 우디가 이해되지 않아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을 때, 우디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라고 대답한다. 물론 우디는 기존에도 사명감 넘치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뒤로 갈수록 마음이 아프기도 했던 건 우디의 목숨 건 행동들이 '보니를 위해 포키를 구하려는 모습'이기도 하면서 '자기 자신을 구해내고자 하는' 애씀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앤디의 주요 애착인형이면서 보안관으로서 모든 인형들을 통솔하고 대장 역할을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어왔던 우디에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 점점 할 일을 잃어버리는' 상실감은, 소리상자를 포함해 목숨을 걸어서라도 벗어나고 극복해내고픈 매정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런 우디의 모습은, 포키가 자신의 정체성이 쓰레기에서 인형으로 변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계속해서 쓰레기통으로 돌진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디는 다른 인형들이 보기엔 잘 이해되지 않고 무리라고 생각될 정도의 모험들, 집밖으로 나가 목숨을 걸며 뭐라도 해내려는 일들을 반복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될 때까지. 

결국 자신의 소리상자를 주어 개비개비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해주고, 무사히 포키를 보니의 품에까지 가도록 해서 자신이 그나마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일들을 모두 마친 우디는, 보니에게 돌아가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보와 함께 남기로 결정한다. 보니와 그 인형친구들을 모두 떠나는 것이면서도 우디에게는 '보니에게 돌아가지 않고 남는다'는 새로운 길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쓰레기통으로만 돌진하던 포키가 스스로 장난감임을 받아들이면서부터 태도를 바꾸었듯이, 우디가 마지막 선택한 사명감을 다하고 그제서야 자신의 정체성이 달라진 현실도 받아들이게 되는 변화의 시점에서 이루어진다. 보니를 따라가지 않는 우디의 모습에 대해 '잃어버린 장난감이 된건가?'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아니, 자기 삶을 찾은거지'

 

 '내가 당연스레 얻어온 것(우디에게는 주인의 애정)'들을 잃어버리게 되고 '나라고 믿었던 모습(우디에겐 대장이자 보안관)'이 깨지는 일은, 이 영화가 '토이스토리'여서 그렇지 우리 모두가 인생 안에서 겪는 일이다. 직장을 잃는 것도 그런 일 중의 하나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도 그런 일 중의 하나일 수 있다. 내가 서 있는 위치와 내 주변 사람들과 그 안에서의 내 역할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환경과 우리들 모습처럼 계속 달라져간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맞닥뜨리고 받아들여야하는 변화는 우리가 원하던 것들과 원치 않던 것들이 있고, 그 앞에서 무력하여 꽤나 고통스럽고 힘겨울 때도 있다. 

우디가 개비개비에게 내어준 소리상자는 사실 개비개비를 위한 이타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우디에게 있어서 어쩌면 자신의 변한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꼭 치러야만 했던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토이스토리4의 마지막 장면까지, 우디의 새로운 선택이 가능해지기까지 그 과정을 보며 내내, 우디를 응원하게 되었던 마음은 나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과도 겹쳐지는 것이었겠지.

 우리 앞의 인생은 이미 펼쳐져있는 길을 따라 걷는(다고 믿는) 걸까, 스스로 그때 그때 만들어가는 걸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 대답할 수 있을만한 혜안이 부족하다. 물론 내가 원하는 인생은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길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이 혹여 내 무력함 너머 펼쳐져있는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일 뿐이지라도, 내가 왜 이 길 위를 걷고 있는지를 말할 수 있고 남에게 떠밀리듯이 걸어가지 않는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인생으로 나아갈 것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