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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벨에포크 - 사랑은 처음부터 '변화'를 품어내어야 하는 걸까

'1분 1초 설레며, 24시간 사랑했던 내 인생 가장 찬란했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어바웃 타임', '미드나잇 인 파리' 등으로 익숙한 '시간 여행'을 컨셉으로 잡고 있는데,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이 있다면 '100% 고객 맞춤형 핸드메이드 시간여행' 이라는 점이다. 주인공인 빅토르가 원래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어서, 본인의 아름다운 추억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내고 그것이 그대로 현실처럼 설계된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아름다운 추억'을 자신의 손으로 '또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대로 설정된 공간 안에서, 그 때를 그리워하는 빅토르에게 행복은 보장될 수밖에 없는 조건인 셈이다.

빅토르는 시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현실의 거의 모든 것에 애정이 식어있는 남자다. 본인이 좋아하던 그림을 그리는 일도 하지 않고 아내는 자신을 이웃보다도 더 거들떠보지 않으며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도 한심하기만 하다. 면도도 하지 않을 정도로 본인의 외관에 신경쓰지 않으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모여있을 때에도 그들이 웃고 떠드는 주제에 대해 영 관심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보인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이 따분하고 지루한 현실을 벗어날 기회. 물론 자신이 젊었을 때의 나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 사람들의 연기와 제작에 의해 본인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기억하고 있는 그 시간과 공간을 한번 더 경험해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 고액을 투자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한번 경험하고 나면 부동산을 팔아가면서라도 계속 있고싶을만한 공간.

빅토르에게 있어 돌아가고 싶은 때는, 로맨틱하게도(다행히도..ㅋㅋ) 현실에서는 말다툼을 신랄하게 하고 있는 바로 그 아내를 처음으로 만났던 시간과 공간이었다. 아내를 만나고 사랑했던 그 '처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이런 생각을 먼저 해볼 수가 있다. 

 # 우리는 어떤 때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질까?

 내가 언뜻 생각해볼 땐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로 나뉠 것 같다. 

 1. 일단 현재 자체를 떠나고 싶을 때 (현재가 싫고 + 과거는 이보단 아름다웠다면)

 2. 과거 자체가 후회되어 다시 돌아가 변화시키고 싶을 때 (과거가 후회된다 +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빅토르에게 있어 시간여행에 고액을 투자하며 마음을 쏟았던 이유는 1번에 해당될 것 같다. 현재의 모든 것에 애정을 줄 수 없는 그에게 아내와 처음 사랑에 빠지던 그 시간들은 반짝반짝하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과거로 돌아가(심지어 나이는 그대로인데도) 마치 첫사랑을 하듯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 설정한 자신의 아내 첫 모습을 연기하는 젊은 배우다. 보는 사람들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는데 내가 빅토르를 볼 때 그가 다시 행복해하며 사랑에 빠지는 건 '아내의 첫 모습'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아내를 연기하지만, 빅토르도 이미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새로운 여자. 로맨틱하게 아내의 첫 모습에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진다고 하기에는, 사실상 모든 일들이 처음 아내와의 만남대로 흘러가지도 않을 뿐더러 외모도 다르다. 또한 젊은 배우에게 마음을 주게 되면서 막상 현실로 돌아왔을 때 처음과 달리 현실의 아내에겐 더이상 그럴듯한 미련이 없어보이며 집밖으로 나오는 모습도 보인다. 물론 빅토르의 아내도 그를 완전히 남 대하듯 내쫓으며 애정을 주지 않았고 심지어 그의 친구와 바람까지 피웠지만, 사실상 내가 볼 때는 남자가 일방적으로 불쌍하게 당했다기보단 둘다 각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어보인다. 현실에 싫증난 두 남녀가 새로 애정을 쏟을만한 대상을 각자 찾아낸 것이다. 마치 영화 첫 부분에서는 빅토르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아웃사이더처럼 보이지만, 영화 뒷부분을 보면 사실상 빅토르의 아내도 빅토르만큼 현실의 많은 것에 싫증나있었던 상태임을 느낄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늙었다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하고, 그런만큼 딱 봐도 늙어있는 남편을 보면 더 화가 나고 한심하며, 자식들을 키우다보니 어느 새 흘러와있는 현재에 대한 애정이 없다. 새로운 사랑, 뭔가 좀더 나아보이는 사람을 만나 자극적인 사랑(바람을 피우는 것)을 하는 것이 그녀에겐 '다시 살아있는' 느낌을 들게 하고 현실을 벗어나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빅토르의 아내는 누가 봐도 빅토르에게 너무 못되고 매정하지만, 빅토르를 향한 분노는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도 함께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늙은 자신과 이 지긋지긋한 풍경이 싫고 그 풍경에 묻어있는 먼지마냥 변하지 않는 남편이 싫고 다시 그 옆의 자신도 싫고. 

 이렇게 그 어떤 것에도(사람이든 일이든) 애정을 쏟을 수 없는 삶에서라면, 인생이라는 건 잠이 안올 때 시체처럼 누워 시계바늘 소리 하나 하나를 세는 것만큼 무의미하고 지루하지 않을까.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내어가는 원동력에는 늘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깔려있다. 그리고 한번씩 그 애정을 잃어버리는 순간 인생도 잠시 멈춰서게 된다. 빅토르와 그의 아내는 멈춰서있다가... 빅토르는 자신이 사랑했던 추억의 한 풍경으로 걸어들어가고, 빅토르의 아내는 현실의 풍경을 바꾸어버린다.

 

 # 사랑은 처음부터 '변화'를 품어낼 수는 없는걸까?

누구나 처음에 사랑에 빠질 때부터 알 수 없는 먼 미래까지를 계산하지 않는다. 어차피 미래를 예상하는 일이란 사실 불가능한데 그 계산을 해내려고 한다면, 사랑엔 더욱 더 빠질 수 없어지니까. 사랑에 '빠진다'는 표현을 쓰는 것부터가 머리로 계산해내는 일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머리보다 마음부터 앞서나가다가 때론 예상치못한 깊은 물에 빠진듯 허우적대기도 하는 일. 그래서 '쉽게 또 깊게 빠진' 사랑일수록 나중에 너무나도 예상과는 다른 변화 앞에 서있게 된다면 어느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큰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내가 처음 사랑하면서 꿈꾸었던 함께인 모습은 이런 게 아닌데?

 

시간이 흘러서 '내가 꿈꾸었던 모습'과 다른 현실에 도달해있을 때 누구나 실망을 할 수밖에 없다. 실망하는 감정은 잘못된 게 아니다. 그만큼 처음에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고 사랑했던 것일 테니까. 그렇지만 기대에 못미치는 '현실'과 '상대방'에게만 실망한다면 나는 조금 부끄러울 것 같다. 현실과 상대방이 나의 기대와 달라져있는 사이에 변해있는 나자신의 모습은 같이 돌아볼 수 없다면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예쁘고 반반하던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근육에 힘이 빠지고, 피부가 거칠어지고 하는 그런 육체의 변화가 불가피하듯이 순수하고 넘치던 열정들도 긴 시간 앞에서는 처음처럼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리고 한치앞도 예상할 수 없는 인생에서, 사랑의 시작부터 앞으로의 변화까지 품어내기를 맹세라도 하자면 그건 주제넘는 일일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며 모든 게 변해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또 딱히 못난 일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변할 내모습까지 다 사랑할 수 있어?'라는 억지스러운 맹세보다는, 내가 오래도록 사랑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겸손과 믿음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해나가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들임을 인정하는 겸손. 그리고 연인과 각자가 함께 성장해가며 그 안의 우리의 사랑도 함께 성장해갈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겪는 몸과 마음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에 어울리고 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와 어울리게 오래가려면 사랑의 얼굴도 변해야하는 게 아닐까. 처음 사랑의 시작에 뜨겁게 타오르는 힘이 필요하다면, 그 사랑이 오랜 시간 속에서 안정적으로 필요로 하는 온도는 처음과 다른 것일지 모른다.  

 

#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면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두 가지 이유가 크게 '현재가 싫어서'와 '과거가 후회되어서'로 나눠본다면,  굳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현재를 소중하게 살게 되는 방법은 거꾸로다. '현재를 좋아하고'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일.'

 그런데 진심으로 현재를 좋아하고 과거를 후회하지 않으려면(100% 순도로) 인생 자체가 평생 금수저 황금길인데다가 실수 하나 안하는 천재로 아기때부터 살아가야 한다. 그게 아닌 보통의 삶을 산다면, 인생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고 뜻밖의 변수도 많으며 우리는 실수를 반복하며 후회도 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내가 가지려는 것은 '금수저 천재'로 사는 별난 인생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사랑하는 능력과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사실 별 게 아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내 마음을 바꾸면 된다.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할 수 있으니까.

 객관적인 현실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기만한 조건이 아니겠지만 그 안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들에 눈을 돌리면 현실은 감사한 공간이 된다. 때론 아침에 일어나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질 때 그 음악이 들리는 내 귀와, 사랑하는 사람을 쳐다볼 때 그를 볼 수 있는 내 두 눈이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만에도 현재가 감사해질 때가 있다. 따뜻한 햇빛 하나에도 감사해질 때가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과거에 잘못한 일들과 실수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로 하는 이유는, 그 당시만큼은 내가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던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때의 내가 어리고 그런만큼 서툴고 부족했을 뿐. 그때의 나는 그 때의 수준에서 열심히 살아내었던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때보단 조금 더 성장한 현재의 내가 서있다는 것도. 물론 현재의 나도 여전히 많은 실수를 하고 30대임에도 서툰 어른이지만, 역시나 내가 감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나름대로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건 믿을 수 있다.

  아마도 시간 여행을 컨셉으로 잡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또 인기를 끄는 것은, 그런 여행을 영화로나마 꿈꾸어보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반증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게 사랑스럽기도 하다. 사실 현재를 미워하는 것도 '더 잘 살고픈 현재에 대한 애정'이고 과거를 후회하는 것도 '과거에 대한 애정'이다. 정말 기계처럼 살아가는 인간이 아니고서야 인생의 그 어떤 순간에서도 미련이 없을 수가 있을까. 영화의 뒤로 빅토르는 분명 새로운 애정의 눈빛을 주는 아내와 함께 처음보다 변화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또 시간이 흐르면 같은 풍경이 질리고 멈춰서는 순간이 오겠지. 그렇다면 그때는 처음보다 조금 더 성숙된 사랑으로 변화를 품어내고 더 단단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의 사랑은 시간이 흘러 불가피한 각자의 변화와 서로의 변화를 직시했고 그 모두를 품어내면서, 좀더 긴 팔과 넓은 품을 가진 모습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현재, 변한 내 앞에서도 여전히 있어주는 (역시나 나처럼 어딘가는 변한)그 사람의 소중함을.

 실제 우리 인생에 시간 여행이란 없다. 그리고 만약 시간 여행이라는 게 가능해진다면 그땐 '늘 그 때뿐일 수밖에 없는' '지나가버리면 끝인' 한 번뿐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소중한 가치는 많이 퇴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