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꿈이지 않았으면, 꿈의 제인
역시 '언노운걸'처럼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보고 왔다.
사실 '꿈의 제인'은 보고 나오면서 후기를 쓰지말까, 못쓰겠단 생각이 들었다. 보면서 마음이 아팠는데 그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아픔인지 자신이 없었고, 이 영화의 조현훈감독님 인터뷰에 실린 말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꿈의 제인에는 결국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포함돼 있는데, 조금 무책임하고 건방진 말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했다" 라고.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내 감상도 '무책임하고 건방진' 이야기가 되는건 아닐지 주저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쓰기로 한건, 역시 이 영화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 내용 스포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의 포스터들이 다 너무 아름답다. 꿈처럼 몽환적인 느낌도 있고.
"좋잖아요. 어쩌다 한 번 행복한 오늘 같은 날"
영화의 시작부터 소현의 나레이션이 들린다. 영화 중간중간, 그리고 마지막에도 나레이션이 들어가는데 편지를 쓰는듯 하면서도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다. 사실 이렇게 나레이션이 들어가는 영화는 많지만, 이 영화는 유독 소현의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듯 귀기울이게 되었다. 소현은 늘 어느 집단에 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혼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사람들 곁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존재. 어느새 또 혼자가 되고, 이제 자기 얘길 들어줄 사람도, 자기 얘길 들려주는 사람도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 이 영화의 흐름은 그런 소현이 만나온 사람들, 함께하려 했던 사람들과 집단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현을 포함한 집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다. 즉 가출청소년인 소현, 그런 사람들이 모인 팸, 그들처럼 소외된 영역에서 살아가는 트렌스젠더들. 그들에 대한 도움이든 비난이든 사회적으로 뻗어지는 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그들 내부에서의 모습과 갈등들이 주로 그려지기에, 이렇게 사회에서 소외되어 구성된 집단 내에서조차 권력자가 있고 그 내부에서의 소외도 있음을 보여준다.
일단 이 영화에서 크게 세 인물을 꼽자면 트렌스젠더이자 소현과 같은 가출청소년들에게 '엄마'였던 제인(구교환), 이야기의 중심인물인 소현(이민지), 소현이 제인과 헤어진 후 새로운 집단에서 의지하게 되는 지수(이주영)다. 이 영화를 소현이 제인과 함께일 때와 아닐때 이렇게 전,후반기로 나눠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에 보던 중에는 제인이 거의 영화 내내 등장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사라져버려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러닝타임을 몰랐어서 이렇게 영화가 짧게 끝나버리는건가 싶기도 했고. 하지만 끝까지 다 보고나니, 영화제목이 '꿈의 제인'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영화 속 현실에서 제인의 존재가 사라지는건 일찍이지만, 영화의 나머지 반절동안 계속 소현의 꿈처럼 살아있는거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다르게 말하면 소현에게 있어서 제인이 함께있는 동안은 꿈과 같은 일이다. 소현의 삶에 자신을 받아들이고 돌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현실같지 않은 일이자, 다시 반복되지도 않는 일이니까.
"방금 제 말 이상하지 않았어요?" "응, 왜?"
소현과 제인과의 대화 중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소현의 발에 대해 얘기할 때였다.
제인이 소현의 새끼발가락이 잘린듯 반토막만 있는 모습을 보고 발이 왜그러냐고 물었을 때, 자기도 모른다고 원래 그랬다면서, 근데 가끔씩 발가락이 꼭 있는듯이 간지럽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편하게 뱉어놓곤 제인을 관찰하며 자기말이 이상하지 않았는지 묻는다. 그리고 제인은 아주 덤덤하게 응, 왜? 라고. 소현에겐 그렇게 자기의 말을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여주는 존재가 처음이었다. 늘 사람들은 '왜 발가락이 없는지'를 궁금해했고 꼭 있는 것처럼 간지럽다는 말을 이상하게 들어왔던 것.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모습에 대해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모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다른 이유를 알아내려고 하고,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원인을 찾아내려고도 한다. 다를 수 있음을 당연시하기보단 낯설게 받아들이며 배타적인 태도를 가진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동성애를 비롯해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은 몇십년전에 비해서야 나아졌지만 여전히 편견들이 괴롭히고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질병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습일뿐임이 밝혀졌음에도, 그들의 존재를 지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잘못되었다고, 고쳐야한다고. 이 영화에서 소현이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과 달리 제인이 자연스럽게 받아줄 수 있는 것은, 제인 자신 역시 사람들의 그런 태도를 받아내며 살았왔을 것이기 때문. 오히려 소현보다도 더 '자신의 존재가 이상한 것이 아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와야했을 것이다. 그것을 '설명해 내야한다'는 것부터 슬픈 일이다. 자연스러운 존재에 대해 왜 변명하듯 설명해야 하는가. 내겐 남들처럼 너무 자연스러운 내 존재에 대해 왜, 증명을 해내야 하는가.
제인이 소현의 곁에 오게 되는 것도, 떠나게 되는 것에도 영화에 제대로 등장하진 않지만 정호가 있다. 제인은 함께 일하던 정호를 사랑했는데, 그 정호는 한동안 소현을 챙겨주다가 떠나버린 존재이기도 하다. 어느날 소현이 떠난 정호를 기다리며 함께 있었던 모텔방에 가서 편지를 쓰고 손목을 그었을 때 들어온 제인이 발견하고 말한다. "안녕? 돌아왔구나"
소현이 기다리던건 정호였지만, 이때부터 소현은 제인팸과 함께 살게 된다. 제인은 다른 친구들도 먹여살리며 엄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소현이 제인에게 왜 일도 안하는 친구들 다 데리고 먹여살리냐고, 왜 함께 사냐고 물어봤을 때 제인의 대답이 또 기억남는 부분들 중 하나다. 이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니, 그래서 다같이 사는거야 라고.
제인은 '인생은 시작되면서부터 불행의 연속이며 어쩌다 한번씩 행복한' 거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태어날 때부터 거짓말을 해야했던 삶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대로만 믿기 때문에, 자신은 계속 거짓말쟁이가 되어야만 했다고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솔직해지면 거짓말쟁이로 취급되는, 그리고 솔직해지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버리는 삶. 그래서 제인이 사랑했던 정호도 다시는 제인을 찾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계속 혼자가 되어버리는 소현도,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죽음을 택하게되는 지수도, 남겨지는 동생도, 마음아픈 존재들은 많았지만 내게 제일 아팠던 건 제인이었다. 얼마나 정호를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식구 중 한명이 제인의 거식증에 대해 '거식증은 왜 걸리는거냐'고 물어보자 자긴 거식증이 아니라 상사병이라고 대답하는 것. 정호의 소식을 알아내고도 소현에게 대신 얘기해주며 자긴 안만날 생각이라고, 그렇게 그리워 해왔으면서도 존재가 거부당할 것에 대한 상처, 두려움이 엿보여서 마음아프기도 했다. 결국 정호가 자신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기에 이들의 존재를 불편해한다는 말을 듣고나서 제인은 식구들을 위한 마지막 김밥을 싸놓고 뛰어내린다. 그녀는 정호, 그리고 소현을 포함한 식구들에게 사랑을 쏟아왔지만, 그녀를 이 세상에서 구해줄 사랑, 그렇게 주는 존재는 없었던 것이다.
제인은 밤에 클럽에서 노래를 하는데, 그 공간에 입장할 때 찍어주는 도장이 'UNHAPPY' 마크다. 그 공간안에 모여서 연대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자고,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자고. 그들은 그 안에서만큼은 현란한 미러볼 아래에서 함께 춤추며 자유롭게 즐거움을 누린다.
결국, 그렇게 말한 제인은 세상을 버린다. 난 늘 자살의 이유에 대해 '죽고싶어서' 라는 표현은 반대한다. 사실 "죽고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살아내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살기를 그만두게' 되는, 그 고통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지. 누구나 태어난 이상 존재하고 싶고 무엇보다 행복하게 존재하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살 힘이 더이상 없기 때문에 멈추기로 하는 것이지, 그들에게 죽을 힘이 남아있는 것 또한 아니니까. 그건 살아갈 힘이 바닥나버리는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만 가볍게 할 수 있는 말이다.
분명 제인도 늘 삶은 원래 불행의 연속이라고 말했고, 그 불행속에서도 살고자 했다. 다들 죽지말고 불행한 얼굴로 또 만나자며. 매일 존재하기 위해 살아갈 힘을 끌어올렸을 것이다. 노래하면서 또 식구들을 챙기면서. 하지만 자신이 사랑해왔고 여전히 사랑하는 존재가 자신을 만나길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힘은 바닥나버린 것 같다. 정호가 자신을 거부한다는 것은 어느날 들었던 '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거야'라는 말의 현실화로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믿음이 생겨버릴 때, 그 고통을 이겨내면서까지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는건 뭐가 있을까.
제인이 떠나며 함께했던 사람들도 흩어지고, 소현은 또 새로운 팸을 찾아 나선다. 그 팸은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신고식을 하고, '아빠'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속으로 그 권력을 두려워하고 분노하면서도 살기 위해 따르는 멤버들의 조합이었다. 소현도 처음 들어왔을 때 공금을 훔쳤다는 누명을 뒤집어쓰는 신고식을 당하고, 그 후에 들어온 지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처음에만 자기가 안훔쳤다고 버티다가 결국 죄송하다고 더 적응 잘하겠다고 수그리는 소현과 달리, 지수는 맞선다. 빈다고 우기는 돈만큼 주고 그팸을 소현과 함께 벗어나려고 한다. 지수는 소현이 자신의 동생과 닮았다며 챙겨주기도 하고 따로 돈번다는 비밀을 공유하게 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도 털어놓는 존재다. 그래서 소현은 제인 때처럼 지수에게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지수는 자신의 친동생과 함께 살 계획을 가지고 있고, 소현은 자신이 곁에 계속 머무를 수 없음을 불편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지수의 그 꿈조차 팸 아빠에게 맞서다가 결국 무너져버리지만.
지수의 죽음은 결국 그 팸의 붕괴 계기로 작용한다. 반항할거리가 생기니 다들 눌러온 분노를 꺼내어 그 아빠라는 권력자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또 흩어지고 소현은 혼자가 된다. 가출한 청소년들끼리의 연대- 팸을 형성하는 것조차 사회에서는 소외된 집단인건데, 그들 내부에서도 이렇게 권력이 있고 소외가 있다. 이 영화의 감독님 인터뷰를 보면 이 영화에서 던져주는 메시지에 대해 더 생각해볼 계기가 된다.
"취재 과정에서 아이들이 삶에서 겪는 참혹함을 목격했을 때, 내가 어떤 선을 넘지 않고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도처에 널려 있는 행불행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것은 내 인생을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했는데 그 질문을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또한 <꿈의 제인>에는 결국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포함돼 있는데, 조금 무책임하고 건방진 말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했다."
출처: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7345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불행 속 희망의 메시지가 있다고들 하던데, 난 사실 이 영화에서 희망을 느끼기엔 고통이 더 컸다. 왜냐하면 최근에 지켜봐온 사회적 문제들만 봐도 실제 현실속에 존재할 제인과 소현과 가출청소년들의 삶은 영화 속에서보다도 더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마음인 사람들끼리의 연대, 이 영화속에서처럼 함께 모여 마음을 나누고 힘을 얻는 것, 물론 중요하고 그게 살아가는 힘이자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현실 속 희망이 되려면 그 연대는 '다른 입장인 사람들'이 나눠주어야한다. 그래야 세상이 변한다. 이 영화속에서 보면 불행한 사람이 같은 불행한 사람을 알아보고, 소외되고 있는 사람이 같이 소외되는 사람을 알아본다. 그렇게 서로 연대를 맺고 위로하지만, 그들을 정작 이 세상에서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할 대다수의 사람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연대집단 내에서조차 권력과 갈등이 발생해 서로를 죽음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가라앉은 마음이 그렇게 오래 갔다. 가출청소년들의 팸을 보면서는 '최선의 삶'이라는 임솔아작가의 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책을 통해 청소년시절 내가 잘 몰랐던 세계가 현실에 있구나- 를 처음 느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그 가출청소년들이 각자 어떤 계기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더욱 문제를 명확히 해주는 것 같다. 아마도 가정불화든 청소년기의 방황이든 이것저것 가출청소년이 된 이유를 스토리에 갖다붙여놓으면, 가출청소년들의 삶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도 '누가 잘못했네'부터 따지려들게 될지 모른다. 물론 그 개개인의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속에 이렇게 팸을 형성하고 또 팸 안에서조차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청소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 사실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꿈의 제인'은 상영관도 많지 않은데, 아마도 이 영화를 찾아 보러오는 사람들 대다수는 영화속 주인공들과 같은 존재이거나 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정작 진짜 이 영화를 보고 고민이란 걸 해봐야할 사람들은 다른 영화관에 가있지 않을까. 이 영화조차 자신이 규정한 세상에서 소외시키고 있지 않을까. 부디 이영화가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겐 위로를, 변화해야할 사람들에겐 변화할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역시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더 문제의 중심에 서있지 못하고 힘내요 응원정도만 해온듯한, 책임감과 죄책감의 어느 중간에서 살아온 것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후기를 쓰기 주저했던 것도 지금 이렇게 쓰면서도 마냥 내키지만은 않는 이유도, 이역시 '글로 쓰고있을 뿐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실제 현실속에서는 내가 저들의 삶을 더 얼마만큼이나 가깝게 느끼지 못하고 있어왔나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기억하기 위해 쓴다. 적어도 이 불편한 마음이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들 동력이 될테니까.
꿈의 제인. 꿈은 현실의 반대인(꿈에서 깨어났다) 의미로 쓰이기도 하면서, 현실에서 이루고싶은 욕구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소현에게 제인과 함께였던 시간이 찰나의 꿈 같았을 수도 있고, 불행해도 함께 불행하자며 그들을 끌어안고 보살피던 제인이라는 존재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이자 꿈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의미로든 나는 제인이 더이상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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