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걸' 소녀의 이름과, 진짜 마음을 찾아가는 여정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언노운걸'을 보고 왔다. 개봉 전부터, 봐야겠다고 마음속에 담아뒀던 영화.
의사라는 직업 공통점으로 포스터만 보고도 끌려버리긴 했지만 이 영화가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꼭 보고싶기도 했다. 의사로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것은 불가피하게 자주 대면하게 되는 거니까. 어떤 이야기들을 할지 궁금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 소녀의 죽음에 강한 죄책감을 느끼는 의사 제니인데, 사실 이 사건에는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죄책감으로 얽혀있다. 다만 각자의 죄책감이 나타나는 형태와 속도가 다르다. 영화 끝까지 보면 결론적으로 그 소녀의 죽음에 직접적인 기여를 한 사람은, 굴러떨어져 외상적 과다출혈로 죽게 만든, 그 소녀를 쫓았던 사람이지만 그 과정에 가기까지는 여러 사람들이 끼어있다. 제니의 경우는 그 소녀가 죽기 전 두드린 병원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 소녀를 목격했던 사람, 그리고 소녀를 방관한 언니 등..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소녀의 한 죽음에 누가 더 많이 잘못했고 어떤 처벌을 받느냐보다는, 각자의 죄책감이 어떻게 수면위로 떠오르고 그들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어가느냐가 더 중요해보인다.
일단, 제니가 느끼는 죄책감이 이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죄책감으로 인한 그녀의 변화로부터 다른 여러 사람들의 변화까지 가지가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죽은 소녀의 이름을 알고자하는 제니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었다면, 숨어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그누구도 들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없었던듯한'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니는 원래 인정받는 전문의로 케네디센터에서 일 시작하기 전까지 몇달만 임시로 허름한 병원을 맡고있는 거였는데 사건이 그와중에 터진다. 진료시간이 끝난 후 인턴 줄리앙에게 훈계를 하던 중 병원 초인종이 울리는데, 그 문을 열어주려는 줄리앙을 제지한다. 이미 병원 진료마감 시간은 한시간도 지난 후였고, 이렇게 다받아주면 의사는 언제 쉬냐며 환자에게 너무 휘둘리지 않아야한다는 말도 하면서. 그리고 다음날 그 초인종을 눌렀던 소녀가 죽은채로 발견되었음을 알게 되며 큰 충격을 받는다. 그녀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문만 열어줬어도 죽지 않았을텐데'라는 죄책감이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건 죄책감을 느끼며 불편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원래 가기로 되어있던 케네디센터도 포기하고 이 허름한 병원에 계속 남아있기로 하며 죽은 소녀의 정체성을,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때론 신체적 정신적 위협까지 감수하면서.
이 영화에서 제니의 죄책감은 소녀의 죽음에만 있진 않다. 인턴 줄리앙에 대한 것도 있다. 의사를 포기하겠다며 나가버린 줄리앙은 이후 계속 제니의 연락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제니는 계속 찾아가고 연락도 한다. 나중에 알고보면 줄리앙이 의사의 길을 포기하려던 이유에는 줄리앙 어릴적의 트라우마가 결부되어 있던건데, 제니는 자신의 갑질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줄리앙에게 그 소녀의 죽음에 대해 알리면서도 '나도 처음엔 너처럼 열어줄 생각이었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갑질이었던거지.' 라며 자책을 한다. 선배의사로서 훈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줄리앙이 열려고 하니까 자신이 일종의 갑질처럼 막는 행동을 하게되었던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제니의 적극적인 행동들은 다 죄책감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나만 그렇게 느낀지 모르겠지만, 이 사건 이후 영화속에서 병원 초인종 소리도 더 예민하게 들리는 느낌이고 제니도 더 즉각반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초인종을 무시했던 것으로 이 모든 일이 벌어졌으니까.
제니는 이 사건 이후로 계속 소녀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하지만, 방해되는 일들이 많다. 아니- 사실 거의 아무도 그녀에게 협조하지 않는다. 또는 협조하는 척만 한다. 경찰마저도 그녀가 여러 사람들에게 소녀 사진을 보여주며 알아보러 다니는 것이 경찰의 일을 침범하고 있어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한다. 보는 내가 무서울 정도로, 더는 알아내러 다니지 말라며 과격한 신체적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그녀의 '소녀 이름 찾기'는 거의 정신병처럼 여겨진다. 그녀를 신뢰하며 치료받던 브라이언의 어머니조차, 그녀가 브라이언에게 자꾸 소녀에 대해 물으니까 주치의를 바꾸겠다며 '당신은 미쳐있다-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정신 나가있는 것 아니냐' 식의 취급을 한다. 브라이언도 거짓말 하고 있는 죄책감으로 인한 고통으로 신체화까지 되어 몸이 아프면서도, (결국 나중에 고백하긴 하지만) 자신의 주치의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제니가 용감하고 강하지 않았더라면 소녀의 이름찾기는 수없는 중단될만한 위기에서 멈췄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죄책감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감정이다. 완전무결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누구나 적절하게 느낄 줄도 알아야하며, 겪을 일들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을 불편해하며 최대한 혼자 떨쳐버리려 하는 지점에서 끝나느냐, 그 죄책감을 통해 본인이 변하려고 하느냐의 큰 차이를 이 영화에선 보여주고 있다. 제니가 '소녀의 이름찾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에서 본인이 그 사건에 엮여있음을 죄책감과 함께 고백하는 여러 사람들의 등장도 끝내 없었을지도 모른다. 제니가 접촉하기 전까지, 각자가 그냥 최대한 모른척 해보려 하며 때론 끙끙 앓기도 하며 버텼을 것이다. 그들이 제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느끼고 있던 죄책감은 오직 조용히 떨쳐내려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제니는 일종의 사건 공론화 역할을 하고 있다. 자꾸 잊고 숨으려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알아내려하고 알리고 움직인다. 그랬기에, 그들의 죄책감을 끌어 올리기까지 제니는 여러 폭력의 위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소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 제니를 돕기는커녕 '그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불편한 존재'로서 여러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제니를 보며 느낀 것은 '죄책감을 외면하지 않는 힘'에 대해서다. 나도 그동안 죄책감이란 감정을, 가질 줄 알아야하지만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그저 '다음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지'로 마무리하며 이겨내야하는 감정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다. 제니도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채 죽은 '언노운걸' 그녀의 이름을 찾아주려는, 그리고 그녀를 기다릴 가족들까지 생각하는 제니의 마음은 실제로 가족까지 찾아낸다. 죄책감을 얼른 떨쳐내려는 대상으로만 삼았다면 이 영화속 다른 인물들과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제니의 첫 행동은 물론 죄책감에서 시작됐겠지만, 자기 죄책감을 떨치기위한 목적보다도 이 사건에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인 그 소녀를 위한 일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죄책감'에 대처하는 제니의 태도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한 사건에서 '불편한 나의 감정'이나 가해자처럼 여겨지고 비난받을지도 모를 '두려움' 보다도, 그 사건에서의 진짜 피해자인 소녀를 먼저 생각하며 행동하는 일. 그러니까 죄책감, 정말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나자신보다도 내가 잘못한 대상을 먼저 생각해야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죄책감이란 감정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것을 떨쳐버리는 일에부터 먼저 주력하곤 하니까.
이 영화가 다 끝나면서 실제 소녀를 죽게만든 남자가 어떻게 처벌되는지,는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 더 주제를 명확하게 해준다고 느꼈다. 만약 그가 자수하고 처벌받고 하는 과정까지 보여줬다면, 이 영화에서 쭉 보여준 여러 사람들의 죄책감들은 '결국 범인은 그였고 처벌받았다'같은 엔딩 아래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세상도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있나. 어떤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기까지는 사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여가 있다- 그중 어느 한 명만 다른 행동을 했더라도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는. 하지만 사건의 모든 전말이 파헤쳐지면 대부분 그 결과 '제일 나쁜, 가장 직접적으로 그 사건을 낸' 범인이 처벌을 받으며 그 과정에서 잘못을 느껴야할 다른 사람들은 묻히기 일쑤다. 그런 식으로 일이 처리되며 사이에 끼어있는 이들은 '그래도 내가 직접 그렇게 한 건 아니니까'로 스스로 위로하며 죄책감을 벗어던지려 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최종범인의 처벌, 얼마나 불행해졌는지 등등을 결과로 끝을 맺지 않음으로서 '사건전말'까지 끼어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고 들여다볼 여지를 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를, 죄책감을 귀찮은 감정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는데 상영관이 많지 않아 아쉽다. 누구나 잘못을 하며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잘못들 하나하나가 '그럴 수 있지'로 넘어갈 이유는 되지 않는다- 누군가 더 큰 잘못을 했으니 작은 잘못의 잘못은 무효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그건 오직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방식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넘어가다보면 다음번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또 다시 잘못을 하면 '다음에 안그러면 돼' 정도의 반성으로만 넘어가니까. 정말 다신 그런 일이 없게끔 사건을 들추고 명확히 하고 피해자의 삶을 찾아주는 일. 그게 이 영화속에선 제니라는 단 한명의 움직임만으로도 가능해졌다는 것이 한편으론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드라마일까 싶으면서도,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저건 영화고 현실은 그래봤자 그렇게 되지 않아'라는 속삭임으로 내가 이 영화속 다른 사람들처럼 죄책감을 떨쳐내려고만 하고 있지 않은지. 그래서 이 영화를 봤다는 게, 죄책감이란 감정과 함께 앞으로 이 영화가 떠오를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니가 '언노운걸' 그 이름없이 죽은 소녀의 이름을 찾아주기까지의 과정은 결국, 죄책감을 안고있지만 아닌척 외면하려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진짜 자신의 마음을 찾게 되는 과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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