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함과 아름다움의 경계가 무너지다 - 마터스
@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내 생애 영화제라는 것 자체도 처음 가보고,
영화가 끝난 후 허지웅씨와 BIFAN 프로그래머인 김세윤씨가 함께 하는 후토크도 있다고 해서 기대하고 갔던 날.
6000원에 미리 예매할 수 있었는데, 이런 좋은 작품을 상영하는데 요즘 영화관에서 실제 보려고 할 때 드는 가격보다도 더 싸서 놀라기도 했다.
마터스를 고른 이유는, 사실 이 작품이 평점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검색해보기도 전에 포스터 문구에 꽂혀
버렸던 부분이 크다.
"잔혹함과 아름다움의 경계가 무너지다!"
마터스라는 말의 뜻은 순교자라는 의미이며, '천국을 보는 눈' 이란 것은 영화 원작 제목에 있는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것조차 영화 후토크에서 듣고 알게 된거였고 오직 난 저 포스터 문구와 저렇게 표정만 강조되어 눈에 들어오는 포스터 자체에 매료되어서 주저없이 선택해버렸다.
부천국제영화제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을 투표를 받아서 골라진 것이라고 하는데, 이 영화가 엄청난 후유증을 가져다주는 영화로 손꼽힌다는 것도, 그래서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꼽힌 것 자체에 김세윤씨가 놀랐다며 이야기하셔서 알았다.
물론 내게도 정말 상상 이상으로 강렬하고,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0순위가 되지 않을까 싶은 영화였다.
사실 이 영화는 또 한 번 보면 더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못보았던 것들을 더 보게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기회되면 다시 한번 보는걸로 하고 이번에 이 영화를 보며 느끼게 되었던 것들만 정리해보기로 했다.
1. 루시와 안나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건 피투성이인 채로 내달리는 루시이지만,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안나라고 느껴진다. 물론 안나가 루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어찌보면 운나쁘게 루시 때문에 이 일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루시는 말도 안되는 비인간적인 폭력에 영문도 모른채 오랜 시간을 시달리다가 나와서 안나를 만난다. 아무에게도 마음 열지 못하다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게 되는 친구인 안나. 그 둘 사이에서는 우정을 넘어서는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사실 루시가 안나의 가브리엘 구출장면을 발견했을 때 배신감과 증오로 안나까지 죽이는 게 아닐까 겁도 났었다.
2. 사후세계를 소유하려는 사람들
도대체 저 잔인한 폭력은 누구의 소행인가, 어떤 목적인가가 영화 후반부에서 다 드러난다. 그리고 왜 안나와 루시가 그 대상이 되었는지도 알게 된다. 해탈이라는 경지, 고통이라는 것을 통해 마치 순교처럼 다다르는 그 일에 어린 여자가 민감하더라는 마드모아젤의 말. 고행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그 경험을 시켜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그 집단은 사후세계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다. 루시와 안나가 가지지 못한, 대항할 수 없는 힘과 돈을 갖춘 그들은 강제로 계속 고통을 주입하고 루시와 안나를 통해서 '천국을 보는 눈'을 얻으려고 한다. 사후세계가 어떤지는 죽은 후에야 알 수 있겠지만 죽었다 살아돌아오지 않는 이상 알려줄 사람은 없고, 오직 죽기 직전, 그러나 죽지는 않은 딱 그 상태에 도달한 자의 입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이야기. 그러니 정말 해탈의 경지에 다다를만큼의 고통을 겪어야만 가능한데 그들은 그 일에서 손끝 하나 다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약자들을 이용해 대신 고통을 겪게 하고 거저 사후세계를 소유하고자 하는 말도 안되는 잔인한 집단. 그렇게 안나로부터 사후세계에 대한 무언가를 들은 마드모아젤이 더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자살을 택하는 장면은 정말 또 한번의 충격 강타이면서도 미친듯한 소유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3. 트라우마
루시는 그 폐감옥에서 탈출한 후로도 사실 탈출한 것이 아닌 삶을 산다. 계속 피해망상과 환각에 시달리고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다. 그 끝에 가해자들, 그의 가족들까지 모두 죽이는 복수까지 시행하게 된다. 트라우마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 영화에서 제대로 보여준다. 왜 자꾸 여자 괴물같은 존재를 보는지, 그 정체가 루시의 심리속 어떤 부분일지 궁금했는데, 영화 중간쯤에서 루시가 탈출할 때 자신과 함께 갇혀있던 또 한명의 울부짖음을 뒤로한 채 혼자 탈출하던 장면을 보여준다.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계속 나타나는 그 환영에게 '다 죽였으니 이제 되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자신이 스스로 자해를 하면서 마치 그 환영으로부터 당하는 듯하게 착각하는 모습에서는 루시의 죄책감이 엿보였다. 생존을 위해 당연히 혼자라도 살아나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고온 자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시달리는 모습이 정말 안쓰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계속 자해하는 모습 속에서, 너무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아왔기에 그 고통이 더 이상 가해지지 않는 현실에 적응하는 것 또한 고통인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4. 고통에서 해탈로
이 영화에서는 비인간적인 고통을 가하며 고통에서 해탈상태로 변해가는 과정을 정말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그 과정에 '해탈'이라는 단어는 붙이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살아나가고 빠져나가려고 계속 발버둥치고 저항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눈빛에 초점을 잃고 아무리 때려도 더 대항하지 않는, 일종의 체념상태. 아예 모든 의지를 놓아버리는 듯한 모습. 살려는 의지, 죽으려는 의지 그 어떤 것도 없어보이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는 무력한 고통 속에서 '더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지' 자체가 가장 큰 고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배자계급과 피지배자계급이 말도 안되는 비균형으로 유지되는 역사들이 가능했던 것도 그 사이에 벗어나고자 하는 포기나 체념이 존재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엎어버리려는 혁명들이 한 번씩 세상을 바꾸어주었던 것이고. 사실 이 영화속에서는 체념하고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 도달하는 안나의 모습에 어떤 아쉬운 소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벗어날 도리가 전혀 없는 완벽한 폭력이자 절망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애를 쓸수록 더 맞고 더 비참해지고 더 대항할 수 없을만큼의 고통을 되돌려 받게되는 곳. 보는 내내 그 잔인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나는 정말 마지막에 마드모아젤이 안나에게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귀를 대었을 때 안나가 시원하게 욕 한번 해주고 눈감았기를 바랐다. 영화에선 어떤 말을 했는지 보여주지 않지만, 그랬기를. 아니면 마치 마드모아젤이 자살하기 전에 한 말처럼 '계속 궁금해하시게' 하고 눈감았기를.
'아름다움과 잔혹함의 경계가 무너지다' 라는 말이 영화를 본 직후에는 바로 와닿지 않았는데, 영화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영화속에선 천국을 보는 경지에 다다른 눈빛들을 열심히 보여준다. 만약 정말 그 상태에 다다른 안나가 더는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고 있는 상태라면, 그걸 아름다움이라도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그 과정이 너무나도 잔혹했고, 그녀가 원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 잔혹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게 아름다움이라면.. 과연 누가 선택할까.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문제, 영화 다 본 후에도 계속 후유증과 충격에 시달리게 하는 부분은 사실 잔인하고 적나라한 장면들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얻고 싶은 사후세계에 대한 앎을 위해 타인에게 말도안되는 잔혹함을 강제부여하면서도 그게 순교이자 아름다움에 다다르는 일인 것처럼 여기는 그들의 잔인성과 오만함에 있다.
영화가 끝나고 허지웅씨와 김세윤씨가 나오셨는데, 처음 하신 말이 표정이 다들 어둡네요- 예상했습니다ㅋㅋ 였다.
이 영화를 볼 용기를 내다니 대단하다고ㅋㅋ 흔히 '가죽 벗기는 영화' 라고들 한다는...
그리고 영화 후 토크에서 나왔던 이야기들 중에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
1. 연출력이 대단한 작품이다.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배반함으로써 노리는 효과가 있는 맥거핀이라는 부분에 정말 탁월하게 만들어진 작품.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저 주인공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진짜인지, 잔인한 장면들 속에서도 계속 쫓게 만든다.
2.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이야기. 안나로부터 사후세계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드모아젤이 그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사람들을 다 불러모아놓은 자리에 참석 전, "계속 궁금해하시게.." 하며 자살하는 것. 왜 그랬던걸까, 과연 사후세계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맞는걸까, 이런 의문에 대해서.
허지웅씨는 실제 마드모아젤이 안나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든, 그게 진실이었든 아무것도 아니었든간에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그 사후세계를 소유하려하고 무언가 분명히 있다는 '완벽한 광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겐 그 어떤 이야기였든 자기들식대로 해석하지 않았겠냐는 것. 나도 그 이야기에 공감했다.
다만 마드모아젤이 자살하는 것에선 사후세계에 대한 어떤 사실조차 혼자 소유하려는, 유일하게 아는 절대자같은 위치에 대한 욕심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유일하게 사후세계에 대해 아는 자신이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고 죽는 일이, 결국 완벽하게 자기 혼자 소유하는 것이 되기도 하니까.
3. 이 영화에서 다루는 '순교'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순교는 보통 자신이 선택해서 자신의 의지 하에 고통을 겪으며 이루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루시는 전혀 자신이 원한게
아니라 타인에 의해 고통을 강요받은 것이고 그 견딤을 통해 해탈까지 가게 되었을지언정(심지어 천국을 보는 눈을 얻었
을지언정) 순교라기보단 타인의 오만함과 폭력에 당한 것이다. 순교를 돈으로 사려는 이들에 의해 당한 것이고, 자발적
인 고행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워낙 잔인한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사실 내용 자체다. 인간의 오만함, 사후세계에 대한 지배욕으로 그마저 남을 이용해 얻으려는 잔인함....
그리고 마지막에 허지웅씨가 인간지네 1, 2 다 같이 보는거 어떻겠냐고 하심.. 사람들 경악(ㅋㅋ)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엔 충격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또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나 자신에 좀 변태적인 성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평소에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보곤 하는데, 이 영화는 정말 멀쩡한 정신으로 보기 시작했는데도 다 보고 나서 취한 느낌이 들었다. 맨정신으로 느끼고 견디기에 좀 힘든 영화였기 때문이다. 2시간정도 되는 영화 하나로 이렇게 정신이 미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구나, 라는 신선한 경험이랄까. 영화를 본 후에 불쾌했다는 평들이 많은데, 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런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자신 스스로 싸이코패스가 아닐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ㅋㅋ 이 영화는 허지웅씨 말처럼 생각해볼수록 정말 연출력이 뛰어나면서도 보여주려는 게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너무나도 연출과 표현을 잘해서 더 괴로운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다시보기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노운걸 - 소녀의 이름과, 진짜 마음을 찾아가는 여정 (0) | 2017.05.24 |
---|---|
밤의 해변에서 혼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0) | 2017.03.28 |
아가씨 - 마음을 빼앗은 '진짜' 가짜 (4) | 2016.06.02 |
곡성 - 어쩔 수 없이, 불편한. (0) | 2016.05.20 |
동주 - 시를 써야만 하는 마음 (0) | 2016.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