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써야만 하는 마음, 동주
자랑스럽게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다거나 애국심이 강해서 찾아보게 된 영화는 아니고
'동주' 바로 윤동주이기 때문에, 시인의 삶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보려고 벼르던 영화다.
아무리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우리나라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거쳤다면 모를 수 없는 윤동주시인.
이과생의 길을 걸어왔지만, 중학교 때부터 문학시간을 제일 좋아하고 특히나 시를 더 좋아했던 나도
사실 교과서와 시험에서 알도록 요구하는 그 이상의 윤동주시인 삶에 대해 따로 알아본 적은 없다.
그의 시에 일본으로부터 제압당하던 우리나라의 슬프고 분한 역사와 그의 애국심이 깃들어있고
일본 통치 하에 젊은 나이로 감옥 안에서 생을 마감해야했던 안타까운 운명이었다는 정도의 기억.
영화 마지막에 윤동주와 송몽규의 일생기가 올라올 때보니 생을 마감한 나이가 현재의 나와 동갑이었다...!
그 유명한 윤동주시인을 영화에서 어떻게 그렸을지, 그의 시를 어떻게 넣어 보여줄지 궁금했다.
그동안 내 마음 속의 윤동주시인 이미지라면, 배워왔던 '서시' '자화상' '참회록'과 같은 시의 영향인지 내 마음대로의 기억일지
모르지만 바르고 순수결백하고 깨끗하며 자기반성적이다. 또한 자연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느껴졌던 것 같다.
영화로 그려진 윤동주시인과 그의 시를 보며 윤동주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나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싶었다.
나는 시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시를 쓰는 사람의 그 마음에 대한 애정이 더 많다.
시를 쓰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겠지만, 분명한 건 시는 그 사람의 세상을 보는 시선에서 나오고
그 시선은 그 사람의 마음을 반드시 '통과해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 명의 시도 같을 수 없다. 오직 그의 것.
시를 읽으며 '대단한 표현력' 보다도 그 시인의 '시선' 자체에 반할 때가 많기도 하다.
왜 시를 쓰고 있는지
어쩌면 문학 장르 중에 마이너에 속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를, 대다수가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낯설어하기도 하는 시를
어떠한 마음으로 써오고 있던 것인지 시인의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닿는 느낌이 들면
시를 더 끌어안고 싶어진다. 아마 시를 쓰는 이의 마음이, 시를 찾아읽고 있던 그 마음에 분명 위로를 주는 순간일 것이다.
나는 시인들에게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뿐 아니라 '시를 써야만' 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때 나도 '시를 써야만' 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 때 내가 가졌던 시에 대한 애정과 그 때의 시선을 지금도 그리워한다.
윤동주시인은 계속해서 시를 쓰지만 한편으로는 나라를 위해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송몽규에 비해 '그림자에 다를 바 없었다'고 비교되는, '글에 숨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느낀다. 그의 시가 그런 그의 마음을 여실히 비추어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가 결국에 빛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정지용시인이 그에게 부끄러운 것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그런 '부끄러워 하는 마음' 이 있었고 분명히 '시를 써야만 하는 마음' 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인물의, 그것도 시인의 일생을 그린 영화라면
흑백영화일 것이며 윤동주 시인의 시를 중간중간에 나레이션으로 읊는 방식일 것이라는 건 보기 전에도 예상해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예상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더 좋았다.
흑백영화로 연출했다는 사실이 보기 전부터 마음에 들었지만, 다 보고 다시 생각해볼 때는 단지 좋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흑백영화가 아니라 컬러영화로 만들었다면 얼마나.... 이상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게 상상이 잘 안될 정도.
그리고 이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더 큰 이유는 그의 시를 다시 들리게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여러 번 읽어본 적 있고 익숙한 그의 시들이, 분명 그 시들은 그대로가 맞는데
평소 늘 입던 옷과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 사람처럼 인상적으로 들어왔다. 원래 알던 내용은 글자 하나 바뀐 게 없지만
다가오는 방식의 변화만으로 새롭게, 한 번 더 느끼게 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원곡을 음정이나 가사 변형으로 '편곡' 해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원곡 그대로를 단지 '다른 목소리'가 불렀는데 그 노래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때 그 감동은 더하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시인의 시들을 그동안 내 마음속에서 들려줘왔던 목소리와 다른 목소리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나라를 잃는다는 것. 역사시간에 배우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지만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던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우리의 말을 쓰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고, 심지어 개명까지 해야 했던 그 당시의 서러움과 분노는 어땠을까.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나의 존재가 스스로 무력하다고 느껴질 때 어땠을까 .
윤동주시인과 송몽규와 또 그 영화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그 시대에 싸우고 있던 수많은 청춘들이 29세라는 나이를
참 다르게 느껴지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니 윤동주시인의 시들은 더 슬프게 읽힌다. 특히 '쉽게 씌어진 시' 와 '참회록' 이 그랬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만들어온 삶의 무게 이상의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 시대의 청춘들은 참 많은 것들을 지고 살았구나.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덤덤하게 들리는 이 한 마디를 하기까지도 실은 자기 삶에 대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지나갔던걸까.
그는 이렇게 자신의 시가 읽히고 또 읽히리라는 것을,
시간이 흘러 사람도 시대도 지나갔지만 마음은 이렇게 시로 남아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것이 참 감사한 일이기에, 더욱더 다시 시를 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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