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6일
단편선과 선원들... 홍대에서 보아온 수많은 밴드들 중 당당히 내 세손가락 안에 꼽는, 많이 사랑하고 아끼는 밴드. 해체소식은 당연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듣는 순간 정말 가슴이 쿵 무너져내리는 느낌.
올해 들었던 수현님의 탈퇴소식도 큰 충격이었고 한동안 우울했지만 그래도 단편선과 선원들은 끝까지 계속 가리라 믿고 있었고(그들 역시 그랬다고 한다) 한동안 밴드의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는걸 애써 무소식이 희소식일거라고, 좋은 앨범을 준비하는 중일거라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쨌든,,, 홍대 인디밴드들을 좋아하다보니 한두번 겪는 일은 아니다. 밴드내 멤버교체와 해체 이런 일들, 그 어떤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매번 나도 맘아픈데 그런때 밴드 멤버들이야말로 더 힘들어보였다. 단선원들은 더 각별히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중에서도 내게 최대의 충격이었지만, 역시나 이런 결정에 도달하기까진 그들이 더 힘겨운 시간들을 거쳤겠단 생각이 들었고. 해체 전 단독공연 알림이 왔을 때 당연히 어떻게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들의 공연보기는 내게 선택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볼 기회가 되어버렸으니까. 마무리공연을 총 세 번 한다고 했는데 그 중 첫번째 공연이 다행히 홍대, 그리고 퇴근 후에 달려가면 공연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장소는 언플러그드. 무료입장 자율기부 공연. 여기가 올해 봄에만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단선원들의 단독공연을 봤던 곳인데... 그래서 이 공연이 더 슬프면 어떡하지, 아니면 오히려 마지막 공연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을 것도 같았다. 조금이라도 앞에서 보고 싶어서 퇴근 후에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갔다. 공연시작이 8시라 선착순 입장번호표를 1시간전쯤부터 배포하지 않을까 했는데, 훨씬 일찍인 5시부터라고 했다. 해체전 공연인만큼 많이들 올거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보게 될까봐 얼마나 초조했던지... 결국 최대한 빨리 갔는데도 받은 입장표는 70번. 입장 전까진 안보이려나 좌절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앞에 좌석들로 사람들이 빠지고 나니 스탠딩 구역에서는 꽤 잘 보이는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입장표에 써있는 글귀는 단선원들의 곡 중 '우리는' 가사다.
무한하게 펼쳐지는 시간 속에 하나의 의미를 온몸을 다해서 새겨가며 걸어가고 있는.
7시반부터 입장하고, 사람들은 금방 문앞 공간까지 완전 꽉찼다. 더 늦게 들어온 단편선과 선원들은 힘들게 사람들 사이사이를 헤치고 들어와야 했던ㅎㅎ 수현님까지 들어오곤 네명이 딱 앞에 서있는데, 이게 마지막 공연이라며 슬퍼할 새가 없을만큼 그저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이 확 벅차올랐다. 정말 저렇게 앞에 서있는 네명을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공연을 준비중인 단편선과 선원들. 장도혁, 최우영, 단편선, 장수현.
8시가 되어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편선님이 소식부터 공식적으로 전했다. SNS로 전달된 게 다였으니까. 오랜 고민과정 끝에 결국 해체를 하게 되었다는 것과 그게 확실히 결정되기 전까진 섣불리 얘기꺼낼 수 없는 문제라 소식을 못전하던 공백기간이 있었다고 미안하다고 하시고. 그리고 이렇게 공연 와준 사람들 고맙다는 이야기랑.
그리고 역시나 편선은 편선이었다~ 마지막 공연이니까 글썽거리는 그런 것 없이, 평소의 넉살로 웃을 수 있는 분위기를 계속 이끌어가던. 이렇게 여기 빽빽할 정도로 많이 오는거 처음이라고, 해체한다니까 이렇게 많이들 와서 락스타 된 기분이라고ㅎㅎ 아마 멤버들끼리는 세번의 공연 다 즐겁게 마무리하자고 서로 얘기하고 다짐도 했을거다. 나중에 도혁님이 멘트하실 때에도 마지막이라고 우울해하고 슬퍼하기보단 정말 공연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얘길 하셨다.
그리고 나도 사실 공연가기 전까진 보다가 울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 역시나 예전처럼 그들이 너무 멋지고 좋아서 그냥 공연에만 몰입되어 신났던 것 같다. 아직 두번의 마무리공연이 남아있기도 하고.
첫곡을 '백년'으로 다들 조용히 몰입해서 시작된 공연. 그리고 이어서 '뿔'을 했다.
스피커와 폰 사이 거리가 안좋았는지, 음질이 좀 깨지긴 하지만.. 사실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깨진다ㅜㅜㅜ집에 와서 돌려보니 뭐 음파의 중첩인건지 아주 현장에서 없던 이상한 소리도 나고 지지직거리고ㅜㅠㅠㅠ흑 '거인'도 그렇고 '황무지'도 그렇고 다른 곡들도 거의다 소리가 불량...역시 공연은 꼭 라이브를 봐야한다는. 자주 돌려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녹음 되어버려 아쉽다.
그래도 오늘 어떻게든 남겨놓고 싶어서 최대한 영상을 찍었던. 손만 폰위치 고정해놓고 공연은 눈으로 직접 보고. 기분이 묘했다. 몇 달동안 못보다가 보는건데 그냥 그 몇달을 건너뛰어 예전 공연장에 내가 돌아와있는 느낌. 계속 이렇게 쭉 볼 수 있을것만 같은. 바로 올해초에만 해도 이자리 봄공연에서 굿즈와 신곡들을 준비중이라고 말하던 것도 떠오르고. 그리고 또 평소처럼 기타줄도 끊어졌다구ㅋㅋ
단편선과 선원들, '공'
'공'까지 한 후에 편선님 기타줄이 끊어져서 늘 그래왔듯 도혁님의 멘트시간이 돌아왔다.
그래도 최근에 했던 공연들 중엔 기타줄 끊어진거 오랜만이라고 긴장했나 얘기하니까 우리는 늘 그렇듯 진정성이라고 외쳤다. 편선의 기타줄 끊어짐 = 열정적인 연주 = 진정성!! 단선원들 공연 자주 다녀본 사람들에겐 익숙한 공식ㅋㅋㅋ
근데 막 편선님 줄 갈고있는 참에 갑자기 옆에 수현님 바이올린 얹어놨던 게 떨어지고. 기타줄 끊어지는건 익숙한데 그건 다들 놀라서 어떡해!! 하구 수현님은 급하게 바이올린 상태 살펴보고ㅋㅋㅋ 조율 다시 하시고 더욱 길어진 멘트시간~ 원래 처음 단편선과 선원들 네명으로 첫 공연을 해보던 게 카페 언플러그드에서였고 그때는 위치도 여기로 옮겨오기 전이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마무리공연을 또 언플러그드에서 하게 되니까 감회도 새롭고 하다는 얘기~ 도혁님이 계속 이런저런 얘기 하시다가 결국엔 조율 좀 빨리 했음 좋겠다고ㅎㅎㅎ 멘트담당자 도혁님! 이건 뭐때문에 웃음 터졌던건지 기억이 안나는데 암튼 웃는 모습 너무 아름다우시다... 퍼커션 연주하실 땐 또 정말 멋있고.
다시 조율된 후 연이어 한 곡은 '순'과 '언덕'
실제 음원 안에는 없지만, 라이브 할땐 단편선이 포효ㅋㅋ하는 앞부분을 특히 좋아하는 곡 '순'.
길고 다뿌셔 하는 곡들 연이어 하시니까 편선님 완전 땀에 머리카락 젖고 쉴 타이밍이 옴. 예전에 공연할 때도 느꼈지만 역시 빡세다고~ 진짜 단편선과 선원들 공연 볼때마다 체력이 대단하다 싶다, 어떻게 저렇게 파워풀한 곡들을 연이어하지. 1시간 넘게 하고. 편선님이 자기들 곡중에 조용한 곡들은 사실 기능성이라며ㅎㅎ 이렇게 힘들 때 쉴 타이밍으로 만들어 놓은거라고ㅎ 그러시면서 한 다음곡이 '거인'이었다. 사실 내가 음원으로 더 자주 듣는건 이런 곡들이기도 한데. 에너지 폭발하는 곡들은 워낙에 라이브공연을 많이 보다보니 이젠 음원으로 들으면 상대적으로 이어폰안에 갇혀있는 느낌이 드는데, '거인'이나 '그리고 언제쯤' '동행' 같은 곡은 가사도 더 서정적이고 감상적으로 듣고있기 좋아서.
원래는 곽푸른하늘님이 피쳐링을 한 '거인'. 가사도 예쁘고 뮤비도 예쁜 곡.
아, 그리고 수현님 오늘 너무 귀여웠던거ㅎㅎ 이 타이밍에서였는진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막 잘생겼다~! 외치다가 장수현 잘생겼다~!! 하니깐 커튼 뒤로 숨으시던....ㅋㅋㅋㅋㅋ 원래 예쁘고 잘생겼는데 귀여움까지 증폭해주시는 분ㅜㅜㅜㅜ
편선님이 이제 공연 끝나간다고 하니까 다들 아아아아 안돼 연발. 이 공연은 끝나선 안돼ㅜㅜㅜㅜ
하지만 역시 편선님은 쿨하게ㅋㅋ 여러분은 시간이 금방 가는 것 같겠지만 저희는 매우 느리게 갑니다... 근데 솔직히 이사람들 공연하는거 보면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을거여서 앵콜 두세개까지 외치긴 좀 미안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앵콜 하나는 무조건 예약이고. 노란방ㅎㅎ
다음 순서가 팬들 모두가 좋아하고 헤이를 외치며 따라부르기도 하는 곡. '연애'
오랜만에 다같이 헤이 떼창외치며 즐기니까 너무 좋았다. 매 공연때마다 들어도 정말 좋은 곡.
진짜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며 슬퍼할 수가 없던게, 그냥 공연 자체를 보는게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그랬던 것 같다. 몇곡 안남았다 얘기할 때에도 마음속으론 계속 이게 끝이 아니야, 남은 공연 2개도 갈거라고 되뇌이고. 내가 갈 수 있는 날 잡힐진 모르지만ㅜㅜ
내가 또 좋아하는 곡들 중 하나인 '황무지'
이곡 하고선 멤버소개를 하자고 도혁님께 다시 마이크 넘기고. 그동안 단편선과 선원들 매니저로 수고해주신 강진원님까지 소개했다 매니저님은 무대위에 계시진 않았지만. 관객 중 어떤분이 우영님한테도 마이크 넘겨서 멘트 좀 해달라고 했는데, 역시 우영님은 나중에 따로 자기에게 구체적으로 말을 거시라고 조용히 말씀하시고 마이크 넘겨버림ㅋㅋ우영님은 원래 조곤조곤하면서도 말씀 되게 잘하신다. 잘 안할뿐이지ㅋㅋㅋ 헤헷 난 나중에 싸인 받으면서 얘기했다. 매번 다음에 받아야지~ 하다가 여태까지 못받았던 싸인을 오늘 '동물'과 '뿔' 앨범 두개 다 가져가서 받았다.
마지막 곡은 '동행'. 다같이 '같이 걸을까요~' '라라라라' 함께 부르면서 뭉클해지기도 하고 마무리인 느낌도 나는 곡. 그리고 앵콜론 역시 '노란방'을 하며 그냥 이땐 다같이 서서 들썩이며 어이!! 떼창도 외치며 즐겼다. 우리들은 마지막이란 언급 나올때마다 계속 어어어어ㅜㅜ하구 번복하라고!!! 외쳤고 진짜 진심이지만... 어쨌든 지금에 와서는 그동안의 음악과 공연들에 대해,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들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렇게 좋아해온만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슬픈거고.
단편선과 선원들이었기에 내가 열심히 공연 따라다니며 내 행복을 얻어온거고. 정말 네명 다 앞으로도 음악을 하든 하지않든간에 행복했으면 좋겠고 본인들이 행복할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음악을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는게 팬으로서의 마음이긴 하고.
도혁님께 싸인받을 때 여쭤보니 남은 두 공연도 아마 서울에서일거라고 하셔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내가 갈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이길 제발.... 남은 두개 꼭 다 가고싶어. 그럴 마음이 강력해서 끝이라는 마음으로 보질 않았다. 정말 오늘 본 이 공연이 마지막이라면...... 안된다. 몇 달만에 보면서, 내가 이 밴드를 너무 사랑하는 이유를 다시한번 스스로 납득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역시 멋있어. 역시 최고야. 남은 두공연도 이렇게 즐겁게 볼 수 있기를. 고맙고 행복한 기억으로만 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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