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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까페, 권나무X유진목 씬디프레젠트

2017년 6월 21일

 

 

'씬디 프레젠트'라는, 씬디티켓라운지에 카페 파스텔도 함께한, 시와 음악의 만남이자 토크콘서트.

상수역에서 가깝다는 이리카페도 가보고 싶던 곳이었고 무엇보다 권나무x유진목시인 조합이라는 것에 바로 예매했다.

 

사실 유진목시인을 SNS상으로는 몇번 접했지만 제대로 시집 읽어본 적은 없었다. 내가 연애라는 주제에 별관심이 없는 사람이다보니 '연애의 책'이라는 제목만 보고 관심을 안두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알고 가려고, 오늘 공연가기 전에 몇 개를 찾아 읽어보았다. 어제 랏밴뮤에서 권나무님이 방송하시며 유진목시인 시를 읽어주시기도 하셨고. 읽고나니 이런 분을 뵈러간다는 게 더 설레였다. 시들이 그냥 연애에 관한 이야기들만은 아니구나(사실 연애라고 해봤자 감정이 표현될 통로가 되는거겠지) 했고, 나중에 위트앤시니컬 가면 사기로 마음먹었다.

 

퇴근하고 바로 갔더니 6시45분쯤 도착했는데, 티켓교환은 7시부터고 선착순입장은 7시반부터. 그 사이에 어디 들어가 있기가 애매해서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입구쪽에 유희경시인님과 위트앤시니컬에서 자주 보아온 식구분들이 있었다. 반가워서 인사하고 싶었지만 계속 지인분들과 함께이시길래 할까말까 소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나중에 먼저 인사해주시던..! 사실 최근에 윜 못가서 인사하고 날 못알아보시면 막 윜 아는척 할 생각이었는데,, 알아봐주시길래 감사+놀라움 으로 '어~? 어 알아봐주시네요??' 바보처럼 말해버림ㅜㅜㅋㅋㅋ 심지어 의사인 것까지 아신다고..?!흑 역시 윜의 유희왕님..

 7시되어 예약문자 확인으로 티켓 받고, 선착순줄 1등으로 서서 입장했다~ 물론 권나무님 공연 오늘 처음 보는거라 앞에 앉고싶긴 했지만 굳이 1등으로까지 들어갈 생각은 아니었는데ㅋㅋ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앞줄 가운데에 딱 앉을 수 있었고ㅎㅎ 약간 공연시간이 지연되어서 7시40분쯤 입장하고 공연시작은 8시10분쯤. 아무도 등장하시기 전에 스크린에 유진목님 시 '피망'이 뜨고 낭독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뒤에서 마이크대고 말씀하시고 계신건가 뒤돌아봤는데 그냥 녹음상태인 것 같았다ㅋㅋ 이 낭독 뒤로는 권나무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가 흘러나왔고.

 그리도 드디어 본격 시작, 카페파스텔이 함께 주관하는 거라서 첫 시작을 유희경시인님이 나오셔서 해주셨다. 오늘 주제를 뭐로 할까 정할 때 처음엔 '사랑과 돈' 생각했는데 아무리봐도 권나무님 유진목님 이 두 분이 돈!과 어울리는 분들이 아니어서ㅋㅋㅋ '연애'로 정하게 되었다며ㅎㅎ 이어 등장하신 권나무님이 제노래가 돈이 안되는 거였다니- 라며 웃음 주시고ㅎㅎ

 뭔가 내 위치에서 조명을 잘 안받아서 오늘 찍은 사진들이 대체로 다 어둡게 나왔다ㅜㅜ 그냥 폰으로 찍어서 원래 화질도 안좋은데...(보정능력 없음)

 몰랐는데 유진목시인이 현재 제주도에 살고 계신다고 한다. 오늘 제주도에서 올라오신 거라는~ 이 공연을 위해! 큐시트 짜놓은 것은 있지만 이 공연전에 두분도 오늘에야 만나신거고, 나무님은 원래 공연을 짜놓은대로 하면 망하더라며 오늘 뭐 흘러가는대로 유동적으로 해보겠다고 하셨다ㅎㅎ 랏밴뮤로 늘 목소리 듣기만 하다가 이렇게 실제로 앞에서 보니까 꼭 '보이는 라디오' 보는 느낌이기도 했다ㅎㅎ 너무 익숙해져있는 목소리와 말투인데, 그사람이 앞에서 얘기하고 있다니..! 역시 목소리 너무 좋으시고 나긋나긋한 말투. 사람들이 성직자처럼 많이들 본다고 하셨었는데ㅋㅋ 오늘 뵈니까 너무나 목소리 말투 탓인 것이구나 싶었으며ㅋㅋ 오늘 보기엔 성직자보다는 실제 직업이기도 한 선생님의 모습에 더 가까워보였다. 아마 권나무님이 10년 넘게 일찍 태어나서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 지금처럼 선생님+뮤지션으로 계셨다면 분명 난 우상화했을거야ㅋㅋㅋ 선생님이면서 뮤지션이라니! 지금은 나도 나무님이랑 비슷한 어른이다보니 선생님이란 직업과 동시에 음악까지 하는 모습(그것도 잘)이 대단해보이면서도 힘들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둘다 좋아서 하고 계시겠지만, 마음이 즐거워도 몸이 힘든건 힘든거니까. 어쨌든 멋지다!! 나도 나중에 음악을 병행하고 싶은데, 솔직히 100프로 자신은 없다.

 늘 함께 하시는 희원님은 처음부터 함께이셨고, 조금 늦게 크랜필드 이성혁님도 오셨다. 전에 까페 언플러그드에서 나혼자간다 공연 본 적 있는데 그후로 오랜만에 보는ㅎㅎ 기타 잘치시고 서브보컬 넣으시는 목소리도 역시 좋으셨다.

 처음에 나무님이 자리에 앉아보시더니 유진목님 위치보다 좀 앞에 나와있어서 의자를 뒤로 당겨 맞춰 앉으셨다. 관객자리와 너무 가까워서 부담스러워서였을 수도 있지만...ㅋㅋㅋ 난 앞에서 이렇게 두분이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모습 보는 게 너무 좋았다. 전부터 알아온 사이시지만 자주 만나온 것은 아니기에, 조심스러움과 어색함이 적당히 묻어있으면서도 서로를 뮤지션과 시인으로 좋아하고 존중하는 느낌. 그래도 나무님은 공연을 많이 하는 분이지만 유진목님은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말할 일도 없고 원래 말도 잘 못한다며 쑥스러워하셨는데- 공연을 다녀온 지금 생각해볼 때, 유진목님이 막 리포터나 아나운서처럼 술술 말씀을 잘하셨다면 되게 이상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랬을 것 같다, 오늘 유진목님의 모습 본 그대로가 마냥 좋기만 했다.

 아마도 몇 가지 주제를 정해 순서가 짜여져있던 것 같은데, 시작은 나무님의 노래로~ 아직 음원발매는 안된 신곡, 1절까지만 완성되었다는? '갔다 온다' 라는 곡.

 이렇게 라이브 하시는 거 처음 보니까 감격이었다. 목소리부터 너무 좋으신 분들 노래는 음원으로 들을 때에도 당연히 좋지만, 라이브를 듣고 나면 공연장을 계속 찾아가게 된다. 귀로 직접 닿는 목소리가 진짜 더최고야ㅜㅜㅠ 어떤 가사에서 더 힘이 들어가거나 떨림이 있거나 부를 때의 감정이 들어가며 생기는 미세한 차이는 음원과는 다르기도 하고.

 사실 난 오늘 영상은 노래하시는 것보다 두분이 대화하시는 것을 더 많이 찍었다. 노래하시는 건 다른 분들도 많이 찍어 올려주실 것 같고, 오늘 특별한 자리인만큼 두분의 이야기를 더 남겨놓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야기 하시는 모습들은 거의 다 영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 후기에 다 올리진 않으려고 한다. 이 공간 이 분위기 함께하던 사람들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솔직한 이야기들을, 그 공간을 벗어난 시간과 자리에 박제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나만 추억으로 돌려봐야지ㅎㅎ

 '갔다 온다' 들은 후에 유진목님이 나무님께 여쭤봤던 것 중 하나는, 시는 실제로는 절대 못하겠는 이야기들을 시로 쓰면 그게 숨는 일이 되기도 하는데 노래를 하는 나무님은 어떤지? 근데 나무님은 본인의 음악도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가사 뒤로, 그렇게 노래 뒤에 숨어있다고. 오히려 시인의 책들은 열기 전엔 모르다가 열고 나면 알게되기도 하는데 권나무의 음악은 그런면에서 더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시낭독 순서도 중간중간에 있었는데 처음으로 읽어주신 것은 아직 시집에 실려있진 않은, 가장 최근에 쓰셨다는 '여주'.

처음 제목 듣고는 도시이름인가? 생각했었는데 시내용을 보니 먹는 열매 이름이었다. 이게 씨를 빼서 먹어야 쓰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한 연을 완성하셨다는. 다들 여주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라 한 관객분께서 검색해서 찾아 보여주셨는데 오이처럼 생겼다. 유진목님이 사실 본인도 드셔본 적은 없다고 하시면서 덧붙이신 얘기에 공감이 갔다. 사실 제대로 모르는 것에 대해 쓸 때가 좋은 것 같다고, 모르니까.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아예 무엇인가를 설명하려고 할 때에야 그거에 대해 잘 알수록 쉬워지지만, 무엇인가를 빌려 내 이야기를 하고싶을 뿐일 때에는 잘 모르는 게 낫다는. 나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거면 필요한 특정한 이미지만 빌려오면 되니까. 여주는 씨를 빼고 먹어야한다는 이 사실 하나처럼. 어떤 것에 대해 알아갈수록 사실 '내가 잘 모른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되니까 제대로 써먹으려면 더 어려워진다. 이런 사실이 또 어긋나고 저런 사실이랑 또 안맞고... 이렇게 만약 여주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안다면 그 이미지와 함께 내 이야기를 맘껏 풀어낼 틈이 좁아지겠지.

 '여주'에 대한 이야기 후 다음 대화주제는 '연애의 장소'였다. 나무님께 연애의 장소를 떠올리라고 하면 '집'이라고 하셨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집이 제일 좋고 편한 연애의 최적장소여서가 아니라, 집에서 함께 있어도 좋을 때가 진짜 좋은 것이더라는 이야기였다. 가장 진짜를 마주하게 되는 장소랄까. 그러면서 어릴 때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오늘 솔직하기로 작정하신 나무님이 참 좋았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유진목시인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곡인 '어두운 밤을 보았지'가 더 이해된다고 하시며, 가사를 낭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가사를 보면 집에서 옆에 잠들어있는 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는데, 왜 그러면서 어두운 밤을 보았을까- 왜 하나둘씩 꺼지는 가로등 불을 세었고, 자꾸 어두운 밤을 보았다고 말할까. 그 정서에 대해 나도 나무님 이야기를 들은 후 좀더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이어서 나무님이 중간에 들어오신 성혁님과 함께 10분가량 되는 이 곡을 불러주시는데 눈을 감고 듣게 됐다. 영상도 안찍고 들었다. 비올라 선율에도 귀기울이고 나무님 목소리, 기타연주와 성혁님이 곁들이는 기타 소리에도.

 나무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만들었고 부르고 계실지 모르지만, 들으면서 난 옆에 곤히 잠들어있는 애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모습을 상상했다. 사랑하는만큼 미울때도 있고 싸우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래도 지금 이렇게 내곁에 있고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하기에 보게 되는 어두운 밤. 어쩌면 당연히 하루의 끝에 찾아오는 밤처럼 이 사랑 앞에 찾아올 밤. 하나둘씩 꺼지는 가로등 불을 센다는 게, 꼭 그 밤이 올 앞으로를 헤아리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나라면 그런 의미를 담았겠구나 싶은. 슬프지만, 그런 마음이 들지않는 사랑을 난 잘 모른다.

 노래 후에 '낮은 언덕을 보았지' 가사에 대해 유진목님이 물어보셔서 기뻐하시기도 했다! 그 가사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었다고. 나무님은 산을 좋아하지만 등산은 나와 싸우는 과정이기도 한데, 사랑은 그게 힘든 싸움을 해야하는 산이 아니라 낮은 언덕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꽃들이 쨔악 한눈에 보이고 그런. 아- 듣고나니까 가사가 더 좋다. 더 슬프고. 근데 또 좋고.

 

 다음 대화주제는 '연애의 물건' 이었는데 두분이 완전 반대여서 재미있었다. 나무님은 나중에 왜버렸지 할정도로 잘버리는 성격이신데, 유진목님은 영화표도 프린팅 다벗겨져 종이만 남은 것조차 못버리시는 성격이라는ㅎㅎ 나무님께서 물건 얘기하다보니 떠올랐다며 '진짜 이별'이란 곡을 들려주셨는데-이것도 음원으론 아직 없는 신곡. 물건을 떠올리며 만드셨단 얘기를 생각하며 듣다보니 가사가 더 와닿았다. 진짜 만든 사람이 이야기를 듣고서 다시 듣는 노래는 다르구나 또한번 생각했던.

 그리고 유진목님 시를 또 하나 낭독해주시는 순서, '태백'. 아까 앞에서 '여주' 낭독했을 때 나무님이 시가 너무 슬프다니까 다음에 읽을 시가 더 슬프다고 하셨는데 이 시인거겠지. 역시 아직 시집에 들어가있진 않은 시라고 한다. 다들 조용히 각자 또 함께 낭독에 귀기울이는 시간. 위트앤시니컬에서의 시낭독회에서도 느꼈던 이런 분위기 참 좋아한다.

 음 또 기억나는 이야기들은...

 유진목시인께서 나무님을 처음 알게된 때. 영화만드는 쪽에서 일하실 때였는데,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나무님 노래를 듣고(아마 '이천십사년사월') 너무 좋아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단 메일을 보내셨었다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무산되긴 했지만 그게 두분의 첫 인연이라니!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되게 용감해지자(?!!) 생각했다.. 두분처럼 이런 좋은 인연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거라면. 이 얘기가 끝나고는 유진목시인 시들 중에 나무님이 하나 낭독하시는 순서였다.

 종종 라디오에서 시를 읽는다고 랏밴뮤 얘기도 하시고~ 낭독은 유진목시인님이 쑥스러우니까 짧은 걸로 하라고 하셨는데ㅎㅎ 나무님이 짧은거여서만은 하는 거 아니라며 읽어주신 '한 밤'. 진짜 짧으면서도 강력하게 다가오는 시였다.

 '신발을 이렇게 예쁘게 꺼내놨네 너하고 나하고 예쁘게 떠나려고.'

 이게 실제로 직접 하셨던 말이 시가 된거라고 하시니까... 아..... 역시 때론, 아름다운 말들이 그냥 일상속에서 이렇게 나오는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쓸까 머리로 짜낸 글보다도, 그냥 툭 뱉게된 말인데 그 진심묻은 말이 더 예쁘고 깊을 때가 있지. 나무님도 나중에 신발을 소재로 하고픈 말이 있는데 아직 노래로 만들지 못했다고 하셨다. 궁금해-

 다른 사람의 시를 낭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혹시나 시인의 호흡과 다르게 읽을까, 다른 곳에 힘주어 읽게되진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신다는 모습이 반갑고 따뜻하고 좋았다. 전에 시낭독회에 가서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아서.

  오늘 공연 끝으로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화분'이다. 다른 곡들도 물론 새롭게 들렸지만 이곡은, 직접 가사의 바탕이 된 시를 듣고나서 들으니까 정말 마음에 콕 박혀버려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내내 생각이 났다.

 유진목시인의 '식물의 방'이라는 시로 만든 노래인건데- 사실 난 오늘 처음 알았다. 오기전 찾아읽은 시들 중에 '식물의 방'은 없었어서- 근데 유진목시인이 먼저 이 시를 낭독하신 후 나무님이 '화분'을 들려주시니까 진짜 와..... 내가 그동안 들어온 '화분'이랑 너무 다르게 들렸다. 가사 하나하나를 내가 이제야 느끼고 있구나 싶은. 그동안 들어올 땐 내가 노력한다고 해도 잘 키우기 힘든 꽃, 화분, 그냥 때론 살고 때론 죽는 삶에 대한 노래 정도로 들었었는데- '식물의 방' 낭독 뒤로 들으니까 왜그렇게 무력감이 뒤따라오던지. 이미 시낭독을 들으며 전달받은 감정에 다시한번 노래가 얹어져서인지. 노래는, 나무님의 목소리는 또 아름답고. 영상은 못찍고 가만히 빠져서 들었다. 내가 유서를 더 쓰고싶어진 이유에 이 때의 영향이 크다. 오늘 공연주제야 연애였지만, 실은 사랑에 가깝지 않았나 생각한다. 특정 누군가 애인을 향한 마음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 계속 누군가를 향하는 마음. 혼자일 수 없는 사람. 삶.

 '식물의 방'으로 노래를 만들 때 가사화하고 싶은 구절이 많아서 고르는데에 고민도 했고, 막상 만들긴 만들었는데 직접 시인에게 이것을 보여줘야할 땐 조심스러운 마음, 걱정이 있으셨다는. 이 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본적 없이 나무님의 느낌대로 만든 것이었어서, 직접 쓴 시인에게 이 노래가 어떻게 느껴질지에 대해. 우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분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워 보이던지. 부러웠다. '화분'은 결국 서로의 다른 언어가 만난 노래인거잖아. 유진목시인의 언어는 종이에 누워있는 '보고 읽는 언어'이고 낭독을 해야 '들리는' 형태가 되는데 그 언어가 다른 사람, 나무님의 마음을 통과해서는 바로 '듣는 언어'가 되어 공간을 채운다. 이런 일이 흔할까. 눈을 감고 시를 읽는 일이기도 하고, 그 시를 읽은 사람의 마음을 듣는 일이기도 한데. 씬디프레젠트의 선물, 진짜 다시 없을지도 모를 이런 시간. 이런 기회.

 

 관객들로부터 세네가지 질문받아 대답해주시는 시간도 있어 소소한 이야기들도 들었다. 나무님이 팔다쳐서 못했던 속초 공연도 다시 준비하려고 한다는 것, 유진목님이 제주도삶을 시작 후 영화를 서울에서만큼 자주 못보지만 그렇게 영화라는 즐거움을 찾게 만들던 스트레스도 적다는 것. 아 그리고 나무님의 '외로움이 너에게 닿지 말라'는 '밤하늘로'라는 곡이 불려짐으로써 결국 너에게 닿고있지 않냐는 질문도 흥미로웠는데ㅎㅎ 이곡을 만들 땐 그렇게 불려지리란 생각을 하시진 않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공연을 하고 계시지만 곡 만들 때 그런 마음은 아니었다는.

 오늘 주제가 연애였던만큼 나도 '연애'라는 것에 대해 좀 생각해보며 돌아왔던 것 같다. 사실 평소에는 연애에 대해 고민하질 않는다. 연애가 내 인생의 큰 주제였던 적이 없다. 물론 했던 적이 있고 앞으로도 할 생각은 있지만 내삶에서 가지는 그런 위치는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알고 잘 살 자신 있기 때문에 이대로 혼자여도 괜찮지만, 함께 하고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또 같이 걷고싶은 그런 정도의 마음이다.

  오늘 나무님을 보면서 노래들에서 늘 느껴지는 감정 중 하나가 외로움인데 그걸 조심스러워 하는듯이?! 느껴졌다. 외로움이 너에게 닿진 않길 바라는 건 어떤 감정일까 생각했다. 난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어서. 아무리 사랑해도 외로운건 너무 당연하고 너역시 그렇지?여와서. 어떤 사람들은 연애를 할 때의 외로움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함께인데 왜 외롭냐고 그걸 사랑의 부족으로 치부하기도 하고. 하지만  사랑을 모른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그런 남들이 '흔히 말하는 연애'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 공감지수가 급격히 낮아지는 영역ㅋㅋㅋ 어쩌면 그런 연애에는 적성이 안맞는 사람이어서 늘 끝나왔을지도 모르고.

 난 애인이 '너랑 있어도 외로워'라고 말한다면 설마 나랑 함께면 안 외로울 줄 알았던거야? 되려 놀랄 사람이고. 지금 애인을 정말 사랑하는데도 진심인데도 그전에 날 스쳐간 사람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한 사람만 앉을 의자를 준비해놓은 것도 아닌데.. 연애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는 행복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그게 상처의 회복이든 외로움의 해결이든 뭐든 거의 실패할거라고 생각한다. 내 존재 내 삶안에서 파생되어온 감정들을 다른 삶을 붙잡고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국 서로 더 괴로워지지 않을까. 연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나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해지지 못하고 그안에서 자꾸 무언가를 찾는다면 사랑이 서있을 공간은 점점 빼앗지 않을까. 내겐 외로움도 애초에 사랑의 부재에서 느껴지는 게 아닌, 이세상에 나란 존재는 나 하나라는 사실에서 오는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감정이고. 나 스스로는 외로움을 포함한 내 감정들 대부분을 불편해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연애는 이런 나를 불편해하지 않는 사람과 해야지 생각한다. 마음은 꺼내 보여줄 수도 없고 만져서 조립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서로의 심리적현실이 함께 있을 때 괜찮아야지 하나가 다른 하나의 불편함이 되어버리면 얼마나 조용하게 꼬여갈까. 

 

 원래 오늘 한시간으로 정해져있던 공연이었는데 1시간반이 넘어가고 있어서, 나무님이 한곡만 더 하시며 마무리를 지었다. 마지막 곡으론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 라이브 담아가고 싶었는데 이때 이미 용량이 꽉차서 더이상 찍진 못했고...ㅜ 마지막까지 나무님의 목소리에 감탄하며 행복했다.

처음 음악을 접했을 땐 시적인 가사들이나 시읊듯 잔잔한 노래를 들어보며 루시드폴을 떠올렸었는데 이젠 같이 묶여지지가 않는다. 권나무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힘이 큰 차이 중 하나인 것 같다. 그 느껴지는 힘이라는 게 샤우팅같은 게 아니라... 오늘 느낀 권나무님과 닮아있다. 부드러워보이는 겉에서는 잘 안보이는 안으론, 웬만한 바람엔 안흔들리는 단단하지만 그래서 외로운 권나무 하나가 있는듯한. 갑자기 궁금해지네, 오늘 처음보고 이렇게 첫느낌을 써놨는데 앞으로 몇번 더 보며 알게되면서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ㅋㅋ

 

 권나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에서 눈물날 것 같고 슬퍼지고 그렇다는 감상평을 많이 봤었다. 잔하게 시읽듯이 슬픈 이야기를 거의 하니까 슬퍼지는 건 당연하지만-

 난 현실적인 슬픔이나 절망,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마음 속 고요함을 울려서 내는 이야기들을 노래로 들을 때 그 슬픔속으로 침잠한다기보단 오히려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다. 편안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삶'이란 '원래 슬픈' 것이지만 기쁨을 찾아가며 사는거지, 기뻐야할 삶속에서 슬프곤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모든 게 유한한데 어떻게 안 슬플 수 있지?) 이런 가사들을 담담하게 노래하는 걸 들을 때 비로소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 하루종일 밖에서 들고다닌 기쁨들을 집에 돌아와 내려놓고 쉬는 느낌. 적어도 집밖에선, '당연한 슬픔'보다 (그게 진짜든 아니든)기쁨이 많이 전시되니까. 내마음에 솔직한 이야기를 꺼냈을 뿐인데 그게 슬픈 감정에 관한 것이면 '당연한 이야기'로보다는 어두운 사람 취급받거나. 물론 난 락밴드도 좋아하고 활기차게 신나게 사는 사람이지만 그건 슬픔을 디폴트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슬픔을 기쁨의 반대감정으로 생각하며 살면 진짜 행복할 수 없다. 슬픔도 기쁨과 마찬가지로 행복의 구성요소니까.

 

 9시45분 다되어갈때쯤 공연이 다 끝났다. 정리하실 때 가까이서 인사하고 얘기나눌 수도 있는데 오늘도 내 소심함으로... 여러 팬분들과 대화하시는 거 하나하나 연예인보듯이 멀리서 보다가 슬쩍 나왔다. 제주도에 계시다니 다시 뵙기 힘들 유진목시인님께도 싸인받을 절호의 기회였는데 책이 없다니..!!ㅜㅜㅠ '연애의 책'은 다음주에 윜 가서 꼭 사야지.

한동안 계속 이 공연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좋은 기회를 안왔으면 놓칠뻔했구나- 나를 칭찬해!ㅋㅋ

쓰고나서 올려보니까 후기가 엄~청 길어졌다. 역시 시와 음악이 만나며 생각이 많아지는구나. 다 쓰고 기억하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이런 좋은 공연을 기획해주신 분들, 그리고 권나무님 유진목님 감사하다. 누린 행복에 비해 너무 티켓값이 낮은 것 같아서 죄송하기도 하고. 행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