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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앤 시니컬, 황인찬 시인 낭독회 (합정)

2017년 3월 28일

 

 

'놀 것 다 놀고 먹을 것 다 먹고 그다음에 사랑하는 시'

 

 황인찬 시인의 낭독회.

'낭독회'라는 행사도 처음 가보고 사실 위트 앤 시니컬에 다니게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황인찬 시인에 대해서도 위트 앤 시니컬 SNS를 통해서 알게 된 거고. 오래전부터 많이 읽고 좋아해온 시인은 나희덕, 심보선 시인인데 최근에 다양한 시인들의 시를 접하며 더 넓은 즐거움에 빠져 있다.

 

 위트 앤 시니컬은 지난 주부터 거의 퇴근 후마다 가고 있다.

원래는 신촌에만 있었는데 합정에도 생겼다. 신촌점은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까페 파스텔, 그리고 여기 합정점은 까페 파스텔 블루, 라는 이름으로 까페와 함께 있는 공간. 까페에서는 커피점처럼 커피, 차와 간단한 먹을거리도 있고 생맥주도 판다. 시집이 가득 채워져 있는것만 봐도 마음이 배불러지고 행복해지는 느낌인데, 심지어 까페에서 파는 생맥주가 너무 맛있는.

 

 위트 앤 시니컬 주인은 유희왕으로 통하는 유희경시인님.

 위트 앤 시니컬이나 유희경시인을 검색하면 어떻게 이 시집서점이 기획되었고 어떤 곳인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인터뷰가 여러가지 나온다.

 개인적으로 정말, 정말 감사하다. 이런 공간을 만들어주셔서.

 아무래도 여긴, 그냥 왔다갔다 하다가 들어간다기보다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올만한 공간이다. 혹시나 우연히 들어왔다 하더라도 시집들이 가득한 공간임을 알게 되면 그 다음엔,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을 경우에 또 찾을 공간이고. 

 그래서 이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일거고 그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고, 같이 오는 사람들도 있고, 혼자 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저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에서 느껴지는 동질감, 그리고 이 공간이 주는 안전한 느낌과 편안함이 있다.

 

 한 쪽으로는 노트나 펜 같은 필기용품, 소품, 고양이가 그려진 아기자기하고 예쁜 종류도 많고(고양이 책갈피를 눈여겨봐놨다) 예쁜 팬시류나 음반 등도 판매하는 프렌테도 함께다.

사람들 없을 때 급히 찍느라 뭐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저렇게 시집이나 소품들을 계산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일반 서점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독립서점 느낌 독립출판물들도 있고

어둡게 나온거지 실제로 이렇게 어둡진 않다. 시집들뿐만이 아니라 에세이, 소설들도 있다.

 

낭독회는 8시 시작이고 1시간 반정도 진행된다고 들었다. 황인찬시인님 이번에 붙은 별명이 3분 황인찬(카레도 아니고..) 인데ㅋㅋㅋㅋㅋ 티켓 풀리자마자 3분만에 매진됐기 때문이다. 본인도 엄청 놀라셨고 다들 이런 반응은 예상 못했다는듯. 사실 나도 그렇게 핫한 분이신 줄 모르고 그냥 티켓 오픈 소식 듣고 시간맞춰서 예매한 것뿐인데, 제한된 30명 안에 들었네. 물론 30명이라는 소모임 단위이긴 하지만, 이렇게 시 낭독회가 공연처럼 빨리 매진된다니- 내가 주최자도 아닌데 반갑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다.

이렇게 마이크가 준비되어있고, 오늘 낭독회는 페리스코프로도 동시 방송한다고 하셨다.

3부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1부에서 황인찬 시인이 '놀 것 다 놀고 먹을 것 다 먹고 그다음에 사랑하는 시' 이 낭독시집에 실린 순서대로 시 7개를 낭독하고 2부에선 낭독회 참가자 중 미리 신청했던 5명이 시 하나씩 낭독하고 3부에선 다시 황인찬시인이 남은 6개를 낭독했다. 인터미션마다는 시인이 선곡한 노래가 하나씩 나온다. 노래는 유희경시인이 틀어주셨다!

 이 낭독시집에는 총 18편의 시가 실려있다. 낭독회 티켓 안에는 까페에서 마실 수 있는 음료 하나와 시집이 포함되어있다. 그래서 난 티켓으로 IPA를 사고, 낭독회 전까지 빨리 읽어보려고 바로 시집도 받았다. 저 정사각형 메모지도 함께 주는데 여기에 시인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써서 넣을 수 있는 것. 3부까지 낭독 마친 후에 질의응답시간이 이어진다.

 낭독회가 시작되면 사진찍는 소리가 안좋으니, 시작하기 조금 전에 슬쩍 찍은 황인찬시인.

처음에 알고 동갑인 사실에 놀랐던. 놀라기보단 신기했다고 해야하나. 학부 때 시동아리를 하며 동기들과 서로 시를 써오고 합평하고 했었지만, 동갑인 '시인'이라는 존재는 낯설었다.

 

 오프닝 곡이 나온 후(파스텔뮤직 대표님이 선곡한 거라던) 시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는 목소리만이 울렸다. 평소에 시를 소리내서 읽을 일은 많지 않다. 너무 좋은 시는 가끔씩 혼자 소리를 내어 읽어보곤 하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모여 누군가 시를 읽는 것을 듣는 일, 특히나 시를 쓴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일. '읽는다'는 것은 읽고싶은 대로 읽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어 사이사이에 연 사이사이에 몇 초를 쉴 지, 어떤 단어에서 목소리에 힘이 더 주어질 지, 어디에서 끊어 읽을 지 이렇게 다 달라질 수 있는 건 '읽는 행위'에도 마음이 담기는 것. 그렇게 읽고 싶고 그렇게 들리게끔 하고 싶은, 읽는 사람의 마음.

 그래서 시를 쓴 시인이 직접 읽는 걸 듣는다는 이 기회가 너무 좋았고, 독자가 읽는 시간이 끼어있는 것까지 참 좋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시인이 아닌 타인은 어떻게 읽는지 읽었는지를 들을 수 있는 거니까. 제각각의 목소리만큼 느낌도 다르고. 오늘 이 낭독회에 있어보면서 앞으로 나도 시를 소리내어 자주 읽어볼까 싶었다.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기 전에 먼저, 오늘 선곡했던 곡들에 대한 설명부터 해주셨다. 사실 2부 끝나고 나온 노래와 3부 끝나고 나온 노래엔 좀 놀랐다. 전에 시인에 대해 검색해봤을 때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봤던 거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류의 노래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그렇다고 낭독회에서 아이돌 k-pop 노래를 틀리도 없겠지만서도...ㅋㅋㅋㅋ).

 2부 끝나고 노래가 나오는데 특히 놀랐다. 모_최 님의 노래라니! 올해 2월에 한잔의 룰루랄라에서 공연을 봤던 뮤지션이다. 그 때 처음 본 거였고 그 후로 다시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데(음원이 나와있지 않다)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바로 알아차렸다. 그 날 본 기억이 꽤나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쑥스러운 듯이 말씀하시던 모습이나, 기타를 치며 고개와 몸을 조금씩 흔들어가며 빠져들어 노래하던 모습, 그리고 딱히 연기하듯이 노래하는 것도 아닌데 처절한 느낌이 묻어나던 특이한 음색. 그런 느낌의 음악만 기억할 뿐 제목은 몰랐는데 '밝은 낯으로 만나자'였다. 진짜 어찌나 신기하던지 이 노래를 여기서 듣다니!!!ㅋㅋ 심지어 지인이라고 하시던. 모최님 본인은 딱히 욕심없는 것 같은데 주변 친구들이 오히려 더 띄우고 싶어서 난리라고 하셨다. 내 친구여도 내가 그럴 것 같다ㅎㅎ 3부 끝으로 이랑님 곡인 것도 좋았다. 좋은 일이라 해야할지 나쁜 일이라 해야할지 애매하지만 이슈가 되기도 했던 이랑님의 '신의 놀이'.

 총 18편의 시 중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시는 '낮 동안의 일'과 '식탁 위의 연설' 이었고, 'You are (not) alone'이라는 시와 '레몬그라스, 똠얌꿍의 재료'라는 시에서는 좋다는 생각과 함께 이 시인이 참 똑똑하게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똑똑하게'라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희지의 세계'를 읽을 때도 느꼈던건데 그의 시를 읽을 땐 머리가 느껴진다. 말하자면, 평소에 시를 읽을 때 감정적으로만 이입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황인찬시인의 시를 읽을 땐 그가 시를 쓸 때 어떤 계산해내는 소리까지 들리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비교적 다른 시들에 비해 '알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잘 읽히는 시의 형태이면서도 '독자 마음대로 생각하고 읽을만한' 거리가 꽤 설정되어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거리로 '읽을 자유'를 주면서도 시가 어렵진 않게끔 느껴지게 하는, 읽기 좋을만큼 적당한 거리로 느껴지니까 그가 똑똑하게 쓴다는, 머리를 쓴다는 느낌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따로 시를 공부해본 것도 아니고 전문적 분석에 관심도 딱히 없고 그래서 책 뒤에 실렸던 해설 같은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내겐 그의 시가 그렇게 느껴진다. 때론 재미있고 때론 귀엽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불편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 시를 읽을 때 시인의 감정에 너무 이입되다보면 같이 무거워지고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그의 시에는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에 있어서 조심스러워하는(어쩌면 본인 스스로 감정을 토해내는 걸 즐기지 않는), 유독 다듬어진 느낌이 든다. 드러나는 감정들도 글로 터져나온다기보다 시인이 여기, 여기 이런 식으로 심어놓은 느낌이어서 시를 읽으며 그 감정에 덮쳐지기보단 시인이 그려놓은 형태를 구경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느낀 재미나 귀여움은 그런 부분에서 오는 것 같다.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는 섬세한 소년이 떠오르고. 그냥 내가 그렇게 읽고싶은 것일수도 있고. 내게 좋으면 내겐 된 거니까.

시가 너무 좋을 때 직접 내 손으로 옮겨보고 싶어지는데, 이건 이번 소시집의 첫 시. '어두운 숲의 주변' 중간부분.

 

이 시는 이렇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채로 숲 속을 헤맸던 어떤 여름날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긴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그랬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사소하고 또 이상하게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부분이 뭔가 로맨틱함과 애틋함이 섞여 느껴진다. 적당히 사소하길 바란다는 말이, 너무 아프진 않게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말처럼 들려서. 적당히 사소한데 또 이상하게 잊을 수 없는 이야기.

 

 그의 시가, 목소리가, 모여있는 사람들이, 이 공간이 다 너무 좋아서 시간이 빨리 갔고 그 안에서 꽉 채워 행복했다.

 가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못오셨을 분들이나 궁금하셨을 분들을 위해, 질의응답 시간에 열심히 들으며 적었다. 완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비슷하게 기록해보려고 했던. 아마 온 사람들 수만큼의 질문이 있었을텐데, 거기서 다섯 가지를 골라서 대답해주셨다.

 

1. 시집제목을 지은 방식에 대한 질문

 원래 뭔가 할 때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한다. 그에 비해 이번 시집 제목은 낭독시집, 소시집 형태여서 가능한 자유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두껍게 묶어 내는 시집이었다면 제목을 더 기억하기 쉽게끔 길이도 신경쓰고 했을 것.

 제목이 나오게 된 건... 거의 지난 반 년간 쓴 시에 먹는 얘기가 많고 이 시집에도 보면 그렇다.(왜일지는 다같이 생각해보자고 하시며ㅋㅋㅋ) 이 시집의 제목은 놀 것 다 놀고 먹을 것 다 먹고 사랑하자, 이렇게 읽을 수도 있고 놀 것 다 놀고 먹을 것 다 먹고 시를 사랑하는,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  이 시집이라 가능한 제목이었고 마음에 든다.

 보통 제가 시를 쓸 땐 짜증으로 출발한다. 짜증이 들어간 제목으로도 생각할 수도 있다. 세번째 나올 시집은 그려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있는 시들 중 얼마나 들어가게 될 지 잘 모르겠다. 그 전에 한 번 정리하는 방식이었고, 소시집 형태라 쉬울 줄 알았는데 서른편 넘는 시들 중 추리는 것부터 순서 정하는 것 등 쉽지가 않았다. 

 

2. 원래 여름을 싫어하는데 시에서 나오는 여름은 좋다며, 황인찬시인의 희지의 세계에서 나오는 '여름'에 대한 질문.

 제가 쓰는 '여름'이 바로 그런거다! 저도 원래 여름, 겨울을 싫어한다. 그런데 싫어해서 시에 많이 쓴다. 시에서 뭐가 좋다고 쓴 건 사실 안좋은거다. 별로 안 좋아서 쓴거다. 사실 좋은것에 대해선 원래 별 생각없기 마련이다. 제 시에 등장하는 새, 새도 원래 싫어하고 개, 개도 마냥 못좋아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여름, 겨울이라는 것이 활용하기 편한 이미지여서 쓰는 점도 있다.

 

3. 황인찬시인의 시는 얌냠냠이다?ㅎㅎ 곱씹을수록 고이는. 이런 시를 계속 쓰게하는 힘이 무엇인지 질문

이 질문을 고른 이유는 지금 힘이 없는 것 같아서다. 시집을 계속 써나가는 사람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계속 써나갈 수 있을까. 사실 힘없는데 어거지로 힘쓰려 하고 있다. 여기 오신 시를 읽거나 쓰는 분들도 그럴거라 생각한다. 이번 시집 제목에 파이팅하자는 의미가 있기도 하다. 뭐 마냥 그런 것도 아니고.

 

4. '종로사가'를 특히 좋아하는데 간단하게라도 얽힌 경험이 있는지 질문

원래 저는 제 경험으로 시를 잘 안쓴다. 제 경험을 가지고 쓰면 그 경험에 사로잡혀서 시가 넓어지지 못한다는 생각. 그런데 연애 끝나고나서 남아있는 이미지나 기억들은 한 번씩 있다. 종로가 은근히 골목이 복잡한데 거기서 겨울 밤 한참 헤맨 적이 있다. 바로 근처에서 계속 헤맸었는데 그 기억을 이용한거다. 이번 시집에서도 제 경험이 들어간 건 짧게, 하나 정도?

 

5. 지금, 여기서, 찬란한 순간에 대한 질문

 이건 답변을 생각 못해봤는데 질문이 멋있어서 골랐다. 찬란한 순간. 잘 모르겠다. 지금 여기서 낭독 끝나고 또 시집 내고 한 번 정리를 했구나, 할 수 있겠구나 착각인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는데... 뻔한 말로는 여기 우리가 이렇게 모여있는 것이 찬란한 순간이다(함께 웃음ㅋㅋㅋㅋ) 책 낸 직후엔 원래 좀 심란한데, 잘 모르겠다. 찬란한 것은 원래 당시엔 잘 모른다. 찬란한 순간은 뒤늦게야 알 것 같다. 시간이 더 지나 한참 뒤에야 할 수 있는 대답인 것 같다.

 

질문 못써냈어도 지금 여기서 추가적 질문 더 받겠다고 하자 어떤 분께서 3분매진에 대한 소감을 물으셨다ㅎㅎ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고 하시며ㅋㅋ 일단 놀라고 당황했다고, 여러 생각도 했는데, 낭독회를 2부로 나누어서 또 해야하나, 30명 넘겨서 스탠딩으로라도 더 모실까 등등. 어쨌든 감사하기도 하면서, 불편하셨을 분들께 죄송하기도 했다고. 다음엔 불편을 최소화해보려고 한다고 하셨다.

 낭독회가 예정했던대로 9시반쯤 되니 끝났고 이어서 싸인회 줄을 섰다. '마음껏 놀고 마음껏 먹고 힘껏 사랑해요!' 라는 문구와 함께 싸인해주시던:) 쑥스러워서 이름 확인하실 때 네 한 마디밖에 못하고 받았다ㅋㅋㅋ

 

 이 시집을 좋게 봐줄지, 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할 수도 있다 생각했고, 집에 돌아가면 더 고민이 많아질 것 같다고 하신 황인찬시인. 개인적으로는 이 낭독시집 너무 좋은데. 그리고 다음 시집이 기대되는데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니(군대에 가신다는) 그 기다림이, 설렘이 끝나지 않을만큼만 길었으면 좋겠다.

 마무리는, 특히나 내 취향을 건드려 소리내어 읽고싶다는 생각이 든 '낮 동안의 일'

 

 

   낮 동안의 일

 

 

 

며칠 전에는 새를 묻고 왔다

 

굳어가는 새를 보며 어찌할 줄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너는 정원을 청소하는 중이었고

 

죽어버린 새를 손에 쥐고 있는 내게 너는 뭘 하고 있느냐 물었지

 

새가 멈췄어,

너무 놀라서 얼결에 그렇게 답해버렸다

 

그 후로 무엇인가 자꾸 멈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야,

 

그것은 잠자리에 들기 전 네가 했던 말이고

맞아, 그냥 다 생각이야,

 

이것은 나의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정원의 나무에는 새들이 많았다

 

날아가고 또 날아가도 새들이 다시 가지에 앉고, 또 어떤 새는 떨어지고, 그냥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