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3일
기다리던 불금! 다행히 회진이 일찍 끝나서 퇴근하고 오늘 갈 계획이던 공연까지 시간 여유가 있었다.
일반 직장인처럼 주말과 평일 중 낀 공휴일을 기다리게 되는 재미가 이렇게 쏠쏠할 수가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이나 휴일이나 별다를 바 없이 병원밖으로 나오지도 못했었는데... 물론 내년부터 다시 마찬가지겠지만... 좀 나으려나.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이 1년의 시간을 정말 후회없게 마음껏 하고싶었던 데에 써버리고 말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객전도 show.3'은 인디스트릿 어플에 뜨진 않았는데 폰부스 공연일정 정보를 받아서 알게 된 공연. 폰부스팬심으로 결정한 것도 있지만, 이 곳에 대해 미리 검색해보니 빈티지한 느낌에 맛있는 술도 있다고 하고, 무엇보다 라인업이 다 락이라서 결정.
19세부터 69세까지 모두 즐기자는 의미가 담겼다는 '채널 1969'는 홍대입구역보다는 합정역에서 가깝다. 뭔가 라디오의 느낌을 주는 이 곳 이름이 좋다. 장소는 합정역에서 찾아가기 쉽긴 한데, 입구가 좁아서 지나칠 뻔했다. 공연 순서는 벤또밤, 크룩스, 베거스, 폰부스였다. 스스스ㅋㅋ 공연 이후로는 DJ의 시간도 있다는데 그것도 호기심이 생겼지만 너무 늦은 시간대라 포기했다. 이런땐 내가 남자였으면 좋겠다. 들어가보니 예상했던 분위기와 비슷했다. 음, 살롱 노마드처럼 아지트 분위기가 있긴 한데 공간이 더 넓고 책장이 많아서 그런지 까페언플러그드와 살롱 노마드를 섞어놓은 느낌도 들고... 무료입장 유료퇴장, 즉 자율기부라는 점도 까페 언플러그드와 같았다. 혹시라도 자리가 벌써 다 찼을까봐 걱정하며 15분전쯤 도착했지만, 역시나 지난 번 클럽 공연 갔을 때처럼 나의 과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많이 비어있어서 마음 편하게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물론 공연 시작 후엔 아예 무대앞으로 다들 나가서 자리맡은 게 의미는 없었지만ㅎㅎ 전반적인 나무색 인테리어가 아날로그적 감성에 익숙한 공간의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 기다리는 시간에 보려고 책꽂이에서 윤의섭시집 마계를 꺼내왔으나, 공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즐기느라 볼 새도 없었다. 음, 시킨 술은 대륙횡단주였나? 미리 메뉴검색을 해갔었는데 이게 맥주에 양주를 섞어 적당히 도수가 있으면서 맛있다고 했어서 마음속으로 찜한 상태였다. 두 잔 먹으면 집에 못돌아간다는 얘기도 있길래 혹시나해서 도수를 여쭤보니 20 정도 될거라고 하셔서 시켰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살롱 노마드의 데드락이 좀 더 맛있긴한데- 잘 넘어가서 홀짝홀짝 하다보니 기분이 좋아져, 아 아껴먹어야겠다 싶었던.
결국 네 팀 공연동안 아껴먹을 수가 없어서 두 팀 끝난 후에 생맥주 한 잔을 더 시켜서 마셨다. 미리 오늘 보게 될 밴드들의 정보나 곡들을 다 찾아보았었는데(나름대로의 예습이 꽤 의미있다), 유일하게 벤또밤에 대한 정보만 없어서 신인밴드인가 했더니- 나상현씨밴드가 이름을 바꾼 모양이었다. 다음 팀이었던 밴드 크룩스가 이야기할 때에야 알았다. 벤또밤! 이름이 깜찍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꽤 어려보였다. 어리게 보면 고등학생들인가 싶을 정도로, 아니면 대학생 새내기? 아무리 봐도 20대에 갓 들어선 것 같은 얼굴들. 겉모습만으론 뭔가 어린 동생들을 보는 느낌으로 봤지만 공연은 많이 해본듯이 노련해보였다. 곡들도 다 처음 들어보는데 풋풋하고 친근한 느낌, 대학교 내 밴드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이건 그냥 어려보여서 그런건가) 듣다보니 신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고 싶었지만 이 때까지는 제자리에서 들썩거리기만 했다. 이들 공연하는 걸 보니 일렉이 너무 재밌어 보여서 나도 통기타말고 일렉도 배워둘껄 싶었다.
벤또밤 이들 나이는 알고보니 실제로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벤또밤으로 검색해선 정보가 별로 없어서 나상현씨밴드로 찾아보니, 곡들이 대체로 재미있고 대중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락스타일같았다. 강한 포스가 있다기보다는 뭔가 친구처럼 편하고 애정이 가는 밴드였다. 그게 이들의 매력인듯.
두 번째 밴드 크룩스! crooks라고 쳐도 크룩스라고 쳐도 병원 필수 아이템인 크록스 신발만 계속 나와.. 유튜브에서 공연들 몇 개를 찾아봤었다. 새장이랑 back off, 돌아오는 길, 지우개 이런 곡들. 미리 듣고 왔던 곡들을 하니 더 반가웠다. 크룩스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무대 앞까지 나가서 보는 분위기도 만들어져서 따라나갔다.
멤버들이 뭔가 장난꾸러기 느낌이 있었는데, 보컬이 대학생이라고 해서 또 한번 신기해했다. 앞에 벤또밤과 그동안 공연도 같이 많이 하고 친해보이던데 비슷한 또래인가보다. 비슷한 느낌도 있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도(사실 성인대접 받는 나이이긴 하지만 내 상대적으로..) 홍대에서 자리잡아 밴드를 하는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고. 내가 대학생일 때 생각하면 기껏해야 동아리활동이 다였으니 말이다. 보컬이 오늘 대학교에서 안좋은 일이 있었다고 컨디션이 안좋다며 이야기하는데- 너무 오랜만에 듣는 대학교생활 이야기라 추억 돋는ㅎ 엄마미소 생김. 보컬과 보컬 오른쪽에 있던 멤버, 둘이 흥이 매우 많아서 저절로 같이 즐거워진 것 같다. 조증이 돌아가면서 온다고 한다ㅋㅋ 곡들 다 좋던데 포탈에서 정보가 많이 안나와서 아쉬웠다. 새장, 돌아오는 길, 지우개 이런 곡들 멜로디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맨오른쪽 멤버가 계속 멘트 중간마다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중얼거리던 게 왠지 기억에 남는다ㅋㅋ
세번째 밴드가 베거스였다. 사진은 많이 흔들림... 그만큼 잘 놀았다는 것으로....
이들 노래도 미리 들어봤었는데 펑크락장르를 추구한다고 한다. 앞 두 팀보다 더 강한 사운드와 에너지로 달렸다. 무대 앞으로 나와서 안볼 수가 없는 공연!! smoking heaven도 듣고 싶었는데 이건 하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또 듣고싶었던 곡 중 하나인 I don't need it 너무 신남.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류의 노래들을 안좋아하고 여리여리 감성적인 발라드취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엄청난 착각이었던 것이다!! 인디 락장르 라이브 공연을 다녀보니, 이젠 감성적인 발라드가 오히려 심심하게 느껴져서 오래 못듣는... 귀찢어지게 소리지르고 뛰는 사운드가 내 취향이었다니 내면에 눌러져있던 흥,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 느낌ㅋㅋ 심장을 울리는 드럼 소리, 지지직 할퀴는 일렉 소리, 낮게 강하게 둥둥거리는 베이스 소리도 너무 좋다. 인디락 밴드들마다 개성있는 보컬들도 너무 좋고. 스타일이 다 조금씩 다른데 하나같이 매력있게 느껴짐.
들썩들썩 신나는 공연을 이어가다가, 보컬이 다친 것 같다는 말에 귀가 번쩍. 드럼 앞쪽으로 신나서 올라서다 팔 긁히면서 피가 난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suture 해야 할 wound인지 보고싶은 응급실 마인드가 작동했지만... 심한 건 아니었는지 앞에 계시던 분이 대일밴드 두 개를 붙여드렸다. 찢어진 상처는 아니길. 어쨌든 이들의 공연은 최강의 흥에 달아오르며 최강으로 들썩거리며 방방 뛰다가 끝이 났다. 제대로 에너지 방출 공연!! 멋짐!!!!
마지막, 폰부스!! 기다리던.. 사실 중간에 맥주 한 잔 더 마시러 뒤로 갔을 때 폰부스 멤버들이 앉아있는 걸 봤는데, 또 속으로만 눈커지면서 엄청 반가워했다. 오빠 나이지만 이 나이 먹고 오빠오빠거리기 뻘쭘한 것도 있고, 무대 위에서의 폰부스를 최고 멋있게 여기며 바라보는 선에서 내가 만족하고 있는 같기도 하고ㅎㅎ 공연중에는 막 소리지르고 호응하고 열심히 그들을 쳐다보면서 즐길 수 있는데, 무대 위의 내 락스타가 무대 밖에 있을 때 왠지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이들이 만들어주는 노래가 너무 좋고 감사해서, 나중에 앨범에 싸인은 받아볼 생각이지만. 아마 나는 뻘쭘해하고 부끄러워하겠지.
지난 단공 때처럼 멤버 전체가 나오게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내가 너무 앞에 나와있어서 한 사이즈에 안들어왔다. 그래서 그냥 내 눈안에만 열심히 찍었다. 좋은 사진은 또 좋은 카메라 드신 팬분들이 많이 남겨주시므로...
폰부스 차례가 되니 거의 10:15pm정도였는데 무대 셋팅에 뭐가 문제가 있었는지 준비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극지, 죽은 새의 노래, 스쿠터블루스, 1-7, 신곡인 MAI 2016 등을 하고 내가 아직 못들어봤던 라이브 들은 곡들은 '슈퍼몽키'랑 '평범한 시절'이었다. 앵콜곡은 재클린. 매일 폰부스 노래를 듣고 있지만 진짜 라이브를 듣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그게 직접 공연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밴드의 매력. 레이져는(이렇게 쓰면 오빠를 안붙여도 될 것 같은 느낌..) 오늘도 미니선풍기를 가져왔다ㅋㅋ 드럼은 탈의상태. 락밴드들이 무대위에서 땀 흠뻑 젖어가며 공연하는 모습, 너무 좋음.
아- 붉은책도 언젠가 꼭 라이브로 들어보고 싶다. 5/14 강남역 레인보우에서 또 공연 있다는데 가면 혹시나 들을 수 있으려나. 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여긴 가기 망설여진다. 주로 물담배하고 방방 뛰며 공연즐기는 분위기가 아닐 것 같아서 그냥 클럽공연을 갈까... 공연의 마지막은 늘 아쉽다. 단독공연을 다녀왔다보니 더 짧게 느껴지는 느낌도 있는 것 같고.
인디 락밴드들의 에너지는 늘 나를 충전시켜준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즐기는 듯한 그들의 모습, 에너지, 열정, 분출. 자기들만의 것을 당당하게 즐겁게 하는 것. (현실적인 문제로 때론 그런 밴드들도 있겠지만) 자기 밴드에 대한 프라이드가 없거나 무대 위를 즐기지 않는 밴드를 본다면 나는 아마 많이 실망할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락밴드로 빨려들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이들이 딱 채워주는, 내 일상생활에서의 부족한 부분이 있다. 생동력. 나는 의사라는 직업에 정말 만족하고 적성도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의사의 불가피한 생활이라는 게 바로 매일매일 아픈 사람들만 본다는 점이다. 병든 삶을 살려나가야 하기 때문에 병든 삶만을 마주한다는 것. 나아지면 병원을 떠나고, 새로운 아픈 사람들이 들어오고 가장 잘 들어주어야 하는 말들이 '아프다'는 말이다. 즉, 나의 일하는 환경에서는 삶의 다양한 면들 중 유독 유한한 삶이라는 것의 불가피한 결과, 약해지고 시들어가는 면만 보게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락밴드공연을 자꾸 찾게 되고 함께 미치고 싶어지는 것 같다. 이들만큼 '살아있음'의 강력한 에너지를 주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대체로 담배 술 많이 하겠지만... 이런 음악 오래하려면 그게 행복하다면 몸도 많이 아끼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당신들 자유이지만. 숱하게 봐왔지만... 늘 나중에 아프고나면 후회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폐와 간으로...
아무튼, 이렇게 음악을 해주는 밴드들에게 참 고맙다. 이들 모두 음악을 오래오래오래 했으면 좋겠다. 10년 후에 홍대를 찾아와도 이들이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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