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6일
오늘 6:30pm부터 가산디지털단지역 7번출구에서 폰부스가 공연한다는 걸 일찌감치 들은 후로 계속 고민했다. 갈지 말지.
사실은 당연히 가고싶지만, 시간상 가서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인가였다. 퇴근길을 힐링해줄 공연이라지만, 그 퇴근길이 내 퇴근길은 아니었기에... 가디단역은 병원에서 무려 3가지 지하철호선을 갈아타야 갈 수 있는 곳인데 심지어 내 퇴근 예상시간은 6시. 열심히 달려가봤자 폰부스공연이 다 끝난 후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오늘 15분정도 회진이 일찍 끝나서 망설임없이 가디단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지하철을 갈아탈 때마다 엄청 열심히 빠르게 걸었는데도 결국 10분정도 늦게, 6:40pm쯤 도착했지만.
도착해서 나도모르게 소리지를뻔 했다. 예상밖의 미션달성이라도 한 것처럼ㅎㅎ 10분 늦었으니 두 곡쯤은 했겠다 아쉬워하며 조금이라도 본다는 데에 만족하기로 하고 갔는데 도착하니 아직 시작을 안한듯 보였다. 막 시작하려는 찰나인 것 같았다. 내가 본 곡이 1,2,3,4,5,6,7 이었는데 이게 첫 곡 맞는거겠지...?(그냥 느낌이 그랬다)
폰부스를 보자마자 계속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들 앞에서 라이브 공연을 보고 듣고 있는 자체가 마냥 행복하게 느껴지는.(분명 어느정도 미쳐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연애를 못하는 이유가 내 안에 있을만한 애정들이 죄다 폰부스로 쏟아지고 있어서인 것 같다.
음원도 물론 좋지만 라이브가 무조건 더 좋다. 그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소리가. 퇴근할 때 늘 즐겁긴 하지만, 퇴근길에 폰부스라니 정말!!! 예전에도 폰부스가 여기서 공연한 적이 있던데 내게 이런 식으로 폰부스공연을 보는건 상상해보지 못한 일. 아예 노는 날, 놀 마음으로 공연을 가는 게 대부분인데 이렇게 평일날 길거리에서 폰부스를 보니까 느낌이 색달랐다. 만약 매일 이렇게 퇴근길에 폰부스가 있다면 주말보다 평일이 더 즐거울지도 모른다.
뭔가 뒤에서 앉아서 구경하는 사람들이나 사진, 동영상 찍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지- 폰부스공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많았지만 가까이에 서서 보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도 소심함에 적당한 거리에서 보느라 사진은 역시 폰카메라로 그냥 대충. 심지어 개인 컷들은 줌을 했더니 더 화질 깨지고. 이런 사진들은 역시 카메라 들고다니시는 분들이 잘 찍어서 올려주시니까 그걸 감사하게 보기로 하고... 사진 조금 찍다가 폰은 가방에 넣었다. 박수치고 하는데에 거슬렸다.
묘했던 것 같다. 홍대에서 공연을 볼 때에는 아무래도 팬들이 일부러 보러 오는 경우가 많다. 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인디락밴드를 좋아하거나 공연을 보려는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정말 퇴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쳐다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거나, 혹은 누군가는 귀를 막으면서 가기도 하는, 완전히 열려있는 공간에서의 공연이다보니 뭔가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는듯한 느낌도 들고. 사실 공연장에서처럼 막 뛰고 소리도 더 지르고 하고 싶었는데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 공간이었다. 흘깃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폰부스를 몰라요?' '폰부스 노래 너무 좋잖아요!!' 외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지만, 당연히 그럴 용기도 없고ㅋㅋ 그냥 지나가버리는 사람들을 폰부스를 알면 올 행복도 모르는 안타까운 사람들로 생각하며.... 혼자 소심하게 공연을 보았다. 겉으론 소심하지만 속으론 격렬하게 기뻐하며. 폰부스 노래들 아무리 들어도 너무 좋다. 레이져 목소리도, 다른 멤버들의 코러스도, 곡의 가사들도. 신나는 것도 차분한 것도 다. 정말 폰부스를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대부분이다) 이 좋은 음악을, 이들의 음악을 너무너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맛집 알려주고 싶은 마음보다 백배천배 큰데 문제는 라이브공연은 안와보면 실감을 제대로 못하리라는 거. 만나는 친구들에게 폰부스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열심히 이야기해보지만 닿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아쉽다.
만약 내가 본 1-7이 첫 곡이 맞았다면, 오늘 셋리스트는 1-7, 낯선 날, mai 2016, 꿈이 춤을 추도록, 바람이 분다, 재클린이었다. 앵콜을 엄청 바라고 주변에서 앵콜도 소심하게 외쳤지만 앵콜곡은 하지 않았다ㅜㅜ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바람이 분다' 에서 터졌다. 지나가시던 중년의 어르신께서 화려한 팔다리로 광란의 꿀렁임을 선보이셔서ㅋㅋㅋㅋㅋ 진짜 웃다가 눈물이 다 났다. 폰부스 신나는 곡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아주 차분한 곡에 속하는 '바람이 분다'에서 그런 흥을ㅋㅋㅋ 그 언밸런스함이 더 웃겼다. 노래부르던 레이져도 연주하던 다른 멤버들도 그 어르신의 흥에 다 즐거워하며 겨우 참으며 공연을 이어나가는 듯했다. 근데 그 분 엄청 낯이 익던데 홍대 길거리에서인가 어디에선가 본건가...? 어쨌든 진짜 흥많은 어르신 덕분에 예상치못했던 웃음폭탄이!ㅋ 동영상을 찍었어야 하는데ㅎㅎㅎ
공연이 다 끝난 후 멀찌감치 앉아서 정리하는 걸 바라보았다. 사실 오늘 용기내서 싸인이라도 받아볼까 생각하며 왔는데.. 결국 팬들이 폰부스 멤버들이랑 같이 사진 찍는 걸 구경만 했다. 평소엔 공연 끝나자마자 시간이 늦다보니 늘 빠져나오기 바빠서, 공연끝난 후 팬들이 따로 폰부스 멤버들이랑 사진찍은 거 올라오는걸 보면 부럽기도 했었는데.. 오늘은 사실 기회가 되었는데도 뭔가 다가가질 못하겠어서ㅋㅋ 늘 보이는 팬들은 폰부스랑 서로 얼굴도 알고 친해보이고, 난 이제 막 폰부스를 안지 한달이고ㅋㅋ 무엇보다 아직 동화가 덜 된 것 같다. 홍대를 꽤 자주 다니고 있지만 뭔가 이질감같은 게 여전히 있긴 하다. 홍대에서 놀고 공연을 보러다니는 게 늘 '일탈'의 느낌이랄까. 내 주변엔 이렇게 공연다니는 사람들도 없고. 클럽과 공연장들 안에서 놀다가도 이 안에 나처럼 공연을 보러다니는 의사 동료들이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있다면 같이 다니면 즐거울텐데 거의 없으리라 생각이 든다. 사실 나에게도 올 해가 그럴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인거니까. 어쨌든 공연을 볼 땐 맘껏 즐기다가도, 공연이 끝나면 문득 드는 그 이질감 때문에 스스로 어색함을 느껴서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공연중엔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인데도 음악으로 다같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 있어서 그게 너무 좋고 편하기도 하다.
오늘은 정말 완벽한 날이었던 게, 이렇게 퇴근길에 폰부스공연을 즐기고 구로역 CGV에서 싱스트리트라는 최근 개봉한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했던 '원스'와 '비긴어게인'을 만들었던 감독이 만든 새로운 음악영화, 심지어 락밴드다!! 마지막 곡이었던 재클린을 흥얼거리며 영화관에 가서 회전초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본 싱스트리트!
싱스트리트는 이 영화에서의 밴드 이름이다. 기대했던만큼 실망없이 너무 즐겁게 보았다. OST들도 역시 하나같이 좋고, 음악들 나올 때 가만히 영화관에 앉아서 볼 게 아니라 리듬을 타고 싶어져서 공연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이 영화를 틀어놓고 다같이 스탠딩으로 보는 상상도 들었다. 아, 재밌을 것 같아. 이 밴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왠지 모르게 파블로프가 떠올랐는데, 이 밴드의 노래들에서는 폰부스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행복한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밝은 환경속에 있지 않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환경에서 만들어지는만큼 멋지고 순수하다. 그리고 그들을 진짜이게 한다. 그들의 삶이, 그들이 느끼는 것들이 노래가 된다. 결말에서 이 밴드가 성공하는 것까지 보여주진 않지만, 그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였다. 점점 갈수록 멋있어지는 건 모든 밴드 멤버들의 숙명인가ㅋㅋ 주인공의 잘 빨개지는 볼과, 한 여자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귀여웠고 이 밴드의 매니저를 맡았던 아이의 붉은빛 머리칼과 주근깨도 귀여웠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워낙 쾅쾅 울리는 소리들을 홍대공연장에서 들었다보니 영화 OST정도의 사운드가 간지러워서 더 크게 막 울렸으면 싶기도 했지만- 이렇게 폰부스 공연을 본 후 밴드 음악영화를 보니까 그 즐거움이 더 이어진 것 같다. 영화를 보며 마시는 캔맥주는 또 왜 이렇게 맛있는걸까.
이건 집에 다와가는 길에 웃겨서 찍은 거. 레이져노래방ㅋㅋ
사실 오늘의 완벽한 저녁에 아쉬운 거 딱 하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노래방이었다. 영화보기 전까지 동전노래방 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었는데 노래방에 폰부스 노래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던 것.
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오고 있었는데, 레이져 노래방이라고 써진 간판이 딱 눈에 띄었다ㅋㅋ 물론 여기도 폰부스노래가 있을리 없지만 그냥 노래방 앞에 이름이라도 붙어있는 우연에 웃음이 났다.
아... 진짜 폰부스노래 노래방에 있으면 좋겠다. 아니 아예 인디밴드들 노래들만 다 있는 인디밴드곡 전용 노래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홍대 안에만이라도.
트위터에서 오늘 가디단에 오면 폰부스 뱃지를 나눠준다고 어떤 팬분께서 올린걸 봤는데 늦게 도착해서 받기 애매했다. 받고 싶었는데. 토요일날 가면 받을 수 있겠지?
어쨌든 예상했던 것과 달리 폰부스공연을 다 볼 수가 있어서 좋았고, 영화도 너무 좋았고, 이틀 후에 또 폰부스를 클럽FF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좋다.
매일 퇴근길이 이렇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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