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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씹기/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中

 삶을 불신하기 때문에 늘 불행에 대한 예상을 하고 그 긴장을 잃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겉으로는 강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몰라도 실은 나의 가장 비겁한 면이다. 어떤 일에 자기의 전부를 바친다면 그것만으로 그의 삶은 광채를 얻는다. 하지만 나는 내 전부를 바친 일, 그 끝에 잠복하고 있을지도 모를 파탄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나 자신의 삶까지도 관객처럼 거리 밖에서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술이란 즐거울 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때 그냥 마시는 것이다. 슬프거나 괴로울 때 마시면 그것은 술이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자기의 시간을 마시는 짓이다.
 


 "쓸쓸한 게 꼭 나쁜 건 아냐. 애써 쓸쓸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기분이 나쁜 거지."
 


 사람은 언젠가는 떠난다. 그러니 당장 사람을 붙드는 것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훼손시키지 않고 보전하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은 내가 끊임없이 사랑을 원하게 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사람은 떠나보내더라도 사랑은 간직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사랑을 할 수가 있다. 사랑에 환멸을 느껴버린다면 큰일이다. 삶이라는 상처를 덮어갈 소독된 거즈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꼴이다.
 


 이유가 있는 사랑은 상대로 하여금 이유를 제공해야 하는 부담을 준다. 사랑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나는 희망을 갖는 일이 두려워. 결국 적응하게 되고, 지속되기를 바라고 그런 것들 모두. 희망을 가지는 것은 뭔가를 믿는다는 거야. 당신은 그 결과가 뭐라고 생각해? 삶은 늘 우리를 속인다구. 삶은 말야. 믿으라고 있는 게 아니야. 배신을 가르쳐주기 위해 있는거야"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겠지."
 " 무슨 뜻인지 알아. 아주 못 믿을 건 아니지. 조금은 믿게 해줘. 말하자면 당신의 청혼 같은 그런 희망, 기쁨의 순간이 있어. 그러나 그것은 스쳐가는 일이야. 거기에 집착하면 인생이 무거워져. 빗방울처럼 발밑으로 떨어진다구."
 삶은 폭력 남편과 비슷한 점이 있다. 때린 다음에 반드시 울면서 안아준다. 그리고 또 때린다. 아내들은 속는 줄 알면서도 믿는다. 절대 이혼하지 못한다. 사실은 이혼할 필요도 없다. 그런 과정 자체가 결혼이니까. 삶은 커다란 속임 속의 작은 믿음을 익혀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의 소모를 두려워했다. 마치 광합성으로 스스로 제 먹이를 만드는 녹색 식물처럼, 햇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길어올려 자기 안에서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사랑을 원했다. 내 몸속에서 혼자 사랑이라는 먹이를 만들고 그것을 먹으며 생존해가기를 말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황량한 겨울 들판을 헤매며 타인을 찾아 울부짖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나 마지막 춤 상대가 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마지막이 언제 오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음악이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대와의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추는 방법이다. 마지막 춤을 추자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고.
 


 어차피 사랑은 질병이다. 하지만 죽는 것보다는 아픈 것이 낫다. 시체는 아플 수초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역설적으로 살아 있음의 마지노선이 된다. 은희경은 그런 사랑이라는 질병을 위해 예방주사를 놓는다. 모든 예방주사가 병균을 침투시켜 항체를 기르게 하는 것이듯이 은희경은 사랑의 병균을 침투시켜 그것을 미리 앓게 하는 것이다. 사랑에서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으로부터 환상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감행하려 한다. 자신의 일부의 제 살을 깎는 아픔을 통해 치명적인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다. "환상이 하나하나 깨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 완결되어가는 과정"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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