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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씹기/에세이

당신이라는 안정제 中

때로는 싫은 것을 불안한 것이라고 믿고 회피해버리기도 하죠. 싫은 것과 불안한 것은 엄연히 다른데도 말이지요. 불안은 실존의 문제이고, 싫은 것은 취향의 문제이니,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불안은 실존의 한 부분이니 벗어날 수 없지만, 취향의 문제는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도 싫은 것을 불안하다 해버리면 벗어나기 힘들어집니다.

 

한꺼풀 더 벗겨보면 불안하게 만드는 또다른 이유가 나오기도 할 테지만, 그냥 이제는 싫어진 것이 아닐까요. 이전만큼 따뜻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아름답게 느껴지지도 않고, 기분좋게 자극하지 못하는 이런 것들은 당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당신 마음에서 멀어져버린 것이겠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규범을 자기 스스로는 떨쳐버릴 수 없을 때, 그동안 눌러두었던 자유에 대한 열망이 공황으로 표출되는 것이지요. 공황의 힘을 빌려야만 삶의 규칙과 틀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지금껏 하던 대로 열심히 살아가려고 했지만, 이놈의 공황이 찾아와서 그럴 수 없었어" 라고 하면서요. 의식적으로 공황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렇게 고통스러운 경험을 스스로 불러일으켰다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겠지만 공황장애 환자들을 오랫동안 관찰하다보니 이런 사례가 많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공황은 지진입니다. 삶의 기반을 통째로 뒤흔들어버리는 지진입니다.

공황은 삶을 재구축해야만 하는 절박한 요구를 불러일으킵니다. 바삐바삐 쌓아올려 튼튼하지 못했던 삶의 태도는 무너뜨려버리라는 명령을 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삶의 속도와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만 좇다가 지쳐버려 더이상 맨틀 에너지를 내면으로 머금고 있을 수 없을 때, 쿵 하고 폭발해버리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모호한 관념어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흐리게 만들지는 말아야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다"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느낌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느낌과 그 느낌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간절히 원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자신의 고통이 유일하게 자기만 지닌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있는 공통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을 정신과 치료에서는 '보편성 universality' 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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