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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씹기/에세이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中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어느 길로 가는 게 맞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걸어간 길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다... 물론 선택한 길이 틀릴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낭떠러지에 도착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한 발짝도 떼지 않으면 영영 아무 데도 못 가게 된다. 그리고 내 경험상 틀린 길은 없었다... 가장 빠른 직선 코스로 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만 버린다면 한 발짝을 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이유는 없다.
 
사소한 일까지 모두 상처라고 말하면 우리 삶은 문제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누가 나에게 어떤 위해를 가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을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다... 스쳐 지나가고 그냥 넘어갈 일까지 굳이 상처라고 말하며 인생을 복잡하게 만들지 마라. 상처와 상처 아닌 것을 구분짓는 것. 그것은 어쩌면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기분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우리가 맨 처음 받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므로 '느낌'을 상처로 남길지 그냥 상대방에게 돌려주고 머릿속에서 지워 버릴지는 내 선택에 달려있다.
 
독립은 의존해야 할 때 의존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한다... 도와달라고 했다가 자칫 인생의 주도권마저 타인에게 내줘야 할까봐 두려워하는 이는 선뜻 타인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못한다. 그럴 경우 그것은 독립이 아니라 고립이 되어버린다.
 
충고는 기본적으로 '너는 틀렸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고 싶다면 그를 내 생각대로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어차피 그는 당신의 충고를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가만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난 후 조심스레 당신의 의견을 말해 주어라. 그리고 결정은 그에게 맡겨라. 그가 설령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나중에 그것을 후회할지언정 그것은 그의 몫일 뿐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과거에 어떤 상처를 입었든지, 자기 인생은 자기 책임이라고 인정하고 더 이상 과거에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하는 일이다.
 
나는 가끔 삶을 완성한다는 것이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은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뽐낼뿐 서로 비교할 수 없듯이, 자기실현을 위해 애쓴 인생은 그 자체로 의미있을 뿐 다른 인생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니 각자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작품을 만들면 그만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죽음이라는 숙명 앞에서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기적이 사랑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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