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
- 나희덕 -
일찍이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법이나 빗줄기에 소리를 내는 법,그리고 가을 햇빛에 아름답게 물드는 법에 대해
배워왔다 하지만 이파리의 일생이 어떻게 완성되어가는 낙법에 달려 있다 어디에 떨어지는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잎이 아닌 것은 아니다 바람에 불려다니는 것처럼 보여도 우연에 몸을 맡기는 것은 아니
다 나는 적어도 수십 마일 이상 날아가 고요히 내려앉는 법을 알고 있다 그러러면 우선 바람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바람이 몸을 들어올리는 순간 바람의 용적과 회전속도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팔랑팔랑 허공을 떠돌다 강물
위에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한방울의 비가 물 위에 희미한 파문을 일으키거나 별똥별이 하늘에 성호를 긋고
사라지는 것도 다르지 않다 죽음이 입을 열어 하나의 몸을 받아들이는 순간 , 그 순간이 중요하다 사진을 찍을 때 피
사체와 빛이 절묘하게 만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듯이 결정적 순간이라는 게 있다 잎맥을 따라 흐르던 물기가 한
꼭짓점에서 일제히 끊어지는 순간,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제 발목을 내리쳐야 한다 그러면 짧으면서도 아주 긴
순간 한 생애가 눈앞을 스쳐갈 것이다 벌써 절반이 넘는 이파리들이 나무를 떠났다 그들은 떨어진 게 아니라 날아
간 것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처럼 보여도 이파리에게는 오직 한순간이 주어질 뿐이다 허공에 묘비명을 쓰며
날아오르는 한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