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씹기/정신의학

내 남자 안아주기 中

바나나색우산 2016. 4. 12. 21:12

우리가 이끌어내야 할 상담의 결과 중 하나가 궁극적으로 '기분이 나아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상담과정 자체가 기분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힘겹고 고통스럽고 난해하다. '견딤'이 필요한 이유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즐겁기보다는 의미있는 일이다. 내가 나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인간은 상처를 받으면 재차 상대방이 '그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만든다. 그래서 상처를 많이 입은 자가 나중에 보면 상처를 많이 주는 사람이 되어 있는 걸 보곤 한다. 즉 상처를 많이 주는 사람은 이미 상처를 많이 입은 사람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나와 타인이 맺는 관계의 생명력은 상대방을 침해하지 않는 적절한 선 안에서 온전히 나 자신을 표현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온전한 자기표현과 너의 온전한 자기표현, 그 어느 쪽도 희생당하지 않는 것.

 


진정한 어른은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다. 감정은 눌러야 하는 게 아니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태도야말로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데는 무의식적 죄책감이 따른다. 아무리 정당한 미움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죄책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편파적인 자기합리화는 점점 더 강력해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

자동화된 심리적 편법을 깨뜨리려는 값진 노력에 헌신하는 자.

 


친밀감에는 '함께'라는 개념이 들어있다. '무엇이든 함께' 가 아니라 '광범위하게 함께'다. 상대에게 편안히 다가가거나 바싹 붙기도 해야 하지만 시기적절하게 멀어질 수도 있어야 한다. 상대의 공간을 지켜줘야 한다. 심리적 독립이 친밀함의 필수요건인 이유이기도 하다.

 


공격당하기 싫다, 마음 상하기 싫다, 다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우리는 경계심을 늦출 수 없고, 타인을 '잠재적 공격자'로 보게 된다. 그러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보여주게 되고, 그러다 내 안의 부조리한 부분, 비합리적인 갈망, 나약함, 해묵은 상처, 수치스러움, 탐욕까지 만나게 된다. 난감하다. 이런 나의 깊은 부분을 인정하는 것보다 나에게 이런 것들을 느끼도록 자극하는 파트너를 탓하는 것이 훨씬 쉽다. 그렇게 한쪽 눈을 가리고 발버둥 치며 내가 옳다고 정당화하고 싶어진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말했다. "환자는 언제나 옳다" 개인이 어떤 상황에서 특정 방어기제를 사용해 어떤 증상을 보이든 당사자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치유의 대전제다.

 

 

영국의 위대한 정신분석가이자 소아과 의사인 도널드 위니캇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는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정서적 안정감의 지표라 말한다.

 

 

놓아준다는 건 상대방이 자신의 참모습, 본래의 면모 그대로 존재하게 해준다는 의미다. 상대의 참자기true-self를 허락하는 것이다.놓아주기의 모습 이면에는 자기중심적인 환상, 잘못된 기대를 과감히 포기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삶과 관계를 성숙하게 일구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가장 근본적인 마음가짐은 '놓아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움켜쥔 것을 과감히 놓아줌으로써, 붙잡고 있는 것을 의젓하게 풀어주고 떠나보냄으로써 빈손이 되고 두 팔을 벌려야 우리는 비로소 진정 소중한 것, 변하지 않는 가치, 나의 경계 안에 여전히 속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상대방이 나를 존중한다는 믿음,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다는 믿음,나를 섣불리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가르치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믿음이 깔려 있어야 편안하게 나를 열 수 있다.

 


다르게 바라본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만 상황과 경험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내 자리에서 과감히 일어나 위치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것이다. 더불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선하게 믿는 것이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상대방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심리적 독립이란 '타인에게 적절히 기대고 의지하면서 함께 기뻐하되, 내 삶은 내가 꾸려나간다는 주인의식을 잃지 않는 것,타인과 하나 될 수는 없지만 타인 없이 살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상대에게 나를 충분히 내어주되 나를 잃지 않는 것, 친밀한 상대방과 깊은 감정을 교류하되 내 감정의 앞뒤는 내가 책임지는 것, 타인을 붙잡을 때와 놓아줄 때를 분별할 수 있는 것,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되 침해하지 않는 것' 일테다. 그런 '느슨한 결합'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의 정취다.

 

 

너그러운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내가 전부가 아니어도 괜찮은 것, 인간은 결코 누군가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하지만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필요한 사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내가 상대에게 그런 존재라는 안정적 믿음을 내포한다. 완벽히 일치하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곁에 오래도록 머물며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사랑. 강렬한 일치적 사랑이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 느슨한 결합 속에서 피어나는 안정적인 사랑.

 

관찰하되 비평하지 않는 무심함 또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적극적 배려다.

 

 

아무리 각별한 사이라 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숙명적 공백, 절대고독의 공간을 지울 수는 없다. 이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인간적 이해'의 실체이리라. 영원히 이해되지 않는 애매모호함과 이 질감을 견디는 것, 그럼에도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하고 편안히 일상을 살아가는 것.

 

"삶을 즐기게 된 비결은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 대부분은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은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이다" 버틀란트 러셀의 문장이다. 깨끗한 단념, 지혜로운 체념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비밀열쇠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완벽함perfection이 아니라 온전함wholenes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