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씹기/소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中

바나나색우산 2016. 4. 6. 11:16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들러붙어 있기에 이렇듯 마음이 슬픈 것이다.
정말이지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들러붙고 만다.
우리 둘은 때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외롭다. (혼자일 때의 고독은 기분 좋은데, 둘일 때의 고독은 왜 이리도 끔찍한 것일까)


 
때로는 답답해서 전부 같으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마음속 가장 깨끗한 장소에서는 그런 바람이 일시적인 변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시적인 변덕은 우리집에서나 통하는 농담이며
진실이며 결론이며 사용 빈도가 가장 높은 상비약이다.
 


애정이란 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애정이 있기에 모든 것이 골치아파진다.

 
뒤돌아보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움직이는 보도 같은 것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고 만다.
어딘지도 모르고, 어쩌면 가고 싶지도 않은 장소로.
그래서, 거기서 가만히 있자고 생각하면 그만 뒤로 걷게 된다. 움직이는 보도에 저항하기 위해.
그렇다고 그렇게 가만히 있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알 수 없다.
때로 생각한다. 이대로 가만히 서 있으면 어디로 갈까.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편이 서로를 길들이는 것보다 훨씬 멋진 일이니까.
 


화해는 싸움의 과정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절망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킵 레프트란 단어는 자동차 교습소에서 배웠다. 아무튼
왼쪽으로 붙어서 차분하게 속도를 너무 내지 말고 가라. 차분하게 왼쪽으로 붙어서, 안심하고.
화해란 이 가르침과 비슷하다. 싸움의 원인이 된 어긋남에다 싸우면서 주고받은 말, 본 얼굴과 보이고 만 얼굴, 던진 가시,
꽂힌 가시,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왼쪽으로 붙어서 속도를 너무 내지 말고 차분하게 흐름을 타는 것.
만약 차를 타고 간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코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화해란 요컨대 이 세상에 해결 따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떠나가지
않는 것, 자신의 인생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 것, 코스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
킵 레프트는 정말 처절하다. 그리고 때로는 터무니없을 만큼 어리석다.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편하니까.
슬프고 바보스러운 평온함. 킵 레프트.

 
"She relishes new life with a cat."
생활이란 맛보는 것이다. 'Relish", 내가 좋아하는 단어다.
그렇게 살고 싶다.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을 맛보듯이.